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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오빠 생각

2019-03-28 (목) 12:00:00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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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방과후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광화문에서는 빈 좌석이 있었다. 안국동으로 들어가며 버스 안은 붐볐다. 한 중년의 남자가 버스에 올라탔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차 있었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 남자는 계속 시선을 피하고 있는 나를 향해 갑자기 주먹으로 내 머리 위를 내리쳤다.

“아저씨 왜 때리세요?” “나이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야지. 건방지게 계속 앉아 있다니.” 그 사람은 늙은 노인이 아니었다. 여학생의 머리를 때리며 그런 식으로 자리를 빼앗는 행동에 너무 화가 났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얻어맞은 것도 창피했다. 화를 참으려고 할수록 눈물이 쏟아졌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오빠를 만났다. 눈물이 가득차 있는 나를 본 오빠가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울고 있어?” 버스에서의 일을 말해주었다. “내 그놈 머리통을 박살내고 오겠다.” 갑자기 오빠가 버스 정류장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때 그렇게 급히 뛰어가던 오빠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1983년 9월 1일이었다.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뉴욕에 출장왔는데 동생이 보고싶어 샌프란시스코에 하루 들리겠다고 했다. 오랫만에 오빠 만날 생각에 기뻐서 마음이 들떴다. 그런데 그때 뉴스가 흘러나왔다. 뉴욕에서 한국으로 가던 KAL 비행기가 러시아 상공에서 미사일에 맞아 269명이 모두 죽었다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오빠는 지금 어디 있는 건가. 몇시간이나 오빠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같은날 뉴욕 공항에서 오빠와 만난 오빠 회사 직원은 탑승하기 전 악수까지 나눴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한국 비행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분의 부인에게 전해진 것은 남편 사망이라는 비보였다. 동생이 갑자기 보고싶어 뉴욕에서 서울로 곧바로 가지 않고 샌프란시스코로 온 오빠의 얼굴을 봤을 때 너무 감격스러웠다.

초등학교 시절 비원에서 열린 어린이 전국미술대회도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다섯살 위인 오빠가 나를 데리고 갔다. 미술대회 입선에 당선돼 상장과 크레파스를 받았을 때도 오빠 덕분인 것 같았다. 지금도 비원 돌담길을 걸으며 꼭 손을 잡아주던 오빠의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문득 오빠가 너무 보고싶다.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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