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일잔재청산, 그 노림수는…

2019-03-25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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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맞나’- 2019년 3월 하순, 그러니까 3.1절 100주년이 지난 지 얼마 안 된다. 그 시점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대한민국. 그 모습과 관련해 불현듯 떠올려지는 질문이다.

“이승만은 괴뢰로, 4.19로 쫓겨났기 때문에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 도울 김용옥이란 사람의 주장이다. 태영호 체포조를 결성했던 한국대학생 진보연합이란 단체 학생들은 야당 원내대표 지역사무실을 점거했다. “남북대결과 전쟁을 추구하고, 적폐청산을 반대했으며, 일본 편을 들고 있다”는 성토와 함께.

“인천상륙작전 때 유엔군 폭격으로 피해를 본 월미도 주민들을 보상해야 한다.”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인천시의회가 통과시킨 조례 안이다. 경기도의회는 지역학교가 보유한 일본기업제품에 ‘전범기업 제품’ 스티커 부착을 의무화하는 조례 안을 추진하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명색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다. 그 이승만을 부관참시하자는 주장이 그렇다. 공과를 떠나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안 보인다.

친일잔재 청산이란 것도 그렇다. 비유가 지나친지 모르겠지만 그 행태가 근본주의 회교 수니파 교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무엇이든 파괴를 서슴지 않은 탈레반과 너무 닮았다. 그렇지 않으면 극좌 혁명팔이를 했던 중국의 문화혁명 시 홍위병을 방불케 한다고 할까.

어쩌다가 대한민국은 이토록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현 문재인 정부의 카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성장주도 정책. 또 다른 카드는 북한 김정은이다. 경제정책은 대실패로 낙착됐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카드. 그러나 그 역시 2019년 2월28일자로 유효기간이 끝난 것 같다.

김정은은 비핵화 의사가 없다는 것이 하노이정상회담 결렬을 통해 온 천하에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니, 신 한반도구상이니 하는 것들도 줄줄이 부도가 날판이다. 그 만회 책으로 내건 것이 관제민족주의에, 친일잔재 청산이라는 것이 국내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다된 밥으로 알았다. 그토록 기대했던 미-북 핵협상이 결렬된 다음날 나온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연설이다. 빨갱이와 친일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그런데 빨갱이란 표현은 대표적 친일잔재라고 몰아세운 것.

그게 일종의 신호였나. 이후 일파만파 번져가고 있는 것이 친일잔재 청산 움직임이다. 그러니까 약발이 다 떨어진 ‘김정은 카드’의 대안으로 관제민족주의 카드가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틀리지 않은 지적 같다. 그렇지만 이는 단순한 표피적 분석에 그친 것이 아닐까.

“표현의 자유가 공격당하면서 서방은 자유민주주의 전통의 생존을 위한 근원적 전투상황을 맞았다.” 아메리카 인터레스트지의 진단이다. 미국의 학계, 언론, 그리고 정치계에서 오늘날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이다.

‘문화지배가 정치지배에 선행되어야 한다’- 네오마르크시즘, 혹은 문화마르크시즘으로 불리는 신좌파 세력의 좌우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의 의견은 한정적인 영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다 정의로운 사회구현’이라는 구호 아래 그래서 신좌파들이 늘리고 있는 것은 각종 금지 어, 금지 견해다. 공적인 장소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란 말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한 예다. 비 크리스천을 배려함으로써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한다는 것이 그 내건 취지.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PC)’은 60년대 이후 신좌파가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 자체가 ‘독재 권력화’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이 문화 마르크스주의가 그렇다. ‘해방’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는 피한다. 대신 ‘인권’ ‘나눔’ 등의 언어사용을 통해 ‘소수자’ 혹은 ‘피해자’를 특히 강조한다. 그 백미라고 할까 하는 것이 ‘사람이 먼저다’란 표어다.

그 같은 언어 사용의 배경에는 그러나 교묘한 함의가 스며있다. 모든 문제들을 자본주의 탓, 혹은 기득권층의 탓으로 돌리면서 소수자의 정체성 강화와 함께 사회내부에 편을 갈라 싸우도록 만들게 하는 것이다.

선명한 편 가르기와 가차 없는 공격. 내가 하면 정의이고 남이 하면 적폐라는 내로남불, 가진 자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증오. 문재인 진영 사람들의 특징이다.

모든 반대자들을 ‘친일파’로 몬다. 그리고 빨갱이란 용어도 친일잔재로 몰아세움으로써 빨갱이, 다시 말해 ‘종북’이니 ‘친북’이란 단어를 금지어로 만들고 있다.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PC)’을 애써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할까.

무엇을 말하나. 그들은 다름 아닌 한국형 문화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김정은 카드는 유효기간이 끝났다. 그래도 오로지 남북경협 추진에만 매달린다. 한미공조가 무너지든, 동맹관계가 훼손되든, 또 외교적 고립상황을 맞든 오불관언인 것이다. 그 가운데 오직 들려오느니 친일잔재 청산의 성마른 구호 소리다.

그 광기어린 관제민족주의의 끝은 무엇일까. “반미정서 확산이 될 것이다.” 미국의회 전문지 힐의 진단이다. 미-북 협상결렬에 따른 교착상태가 장기화 될 때 반미카드를 꺼내들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체제전복을 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쩐지 자꾸 그런 생각이….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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