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인우월주의가 두려운 이유

2019-03-20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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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모스크에서 50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브렌턴 태런트는 뉴질랜드가 아니라 호주의 그래프턴이라는 작은 도시 출신이다. 호주는 예로부터 백인만을 우대하는 ‘백호주의’로 이름난 나라다. 1978년 이전까지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등 극동 아시아계의 이민을 극도로 제한해 왔다. 지금은 호주 인구의 12%가 아시아계다. 요즘 LPGA 대회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여성 프로골퍼 이민지(세계랭킹 3위)도 한국계 호주인이다.

호주에는 백호주의를 신봉하는 극우주의자들이 극소수 존재하는데 이번에 참극을 빚은 태런트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엊그제 법정에 나와 “더 많은 침입자(무슬림)들을 죽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그는 사건 전에 제작한 선언문에서 자신의 공격은 침입자에 대한 “백인의 복수”라는 표현으로 백인우월주의가 범행동기임을 분명히 했다.

무서운 세상이다. 히틀러의 나치즘도 백인우월주의와 독일민족주의가 결합된 인종편견이었다. 그런데 지금 네오나치 등 극단주의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캐나다의 랄프 굿데일 연방공안장관은 뉴질랜드 사태에 관해 “캐나다에서도 극우세력인 백인우월주의가 위험할 정도로 번지고 있다”며 2017년 퀘벡시티 이슬람사원에서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사건은 무슬림 증오범죄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굿데일 장관은 지난해 4월 토론토에서 발생한 미니밴 난폭질주 사건(10명 사망)도 특정그룹에 대한 인종혐오가 동기였다고 밝혔다. 이 난폭질주 사건에서 한인 3명이 희생되었었다. 백인우월주의의 팽창은 남의 일이 아니다.

9.11사태 이후 미국에는 무슬림을 증오하거나 멸시하는 이슬라모포비아가 번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무슬림 인구가 얼마인지 아는가. 345만명이나 된다. 미군에 복무하는 무슬림이 1만5,000명이다. 미네소타에서는 소말리 출신의 일한 오마르가, 미시건에서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라시다 탈리브가 미국 최초의 무슬림 여성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될 정도다.

만약 트럼프처럼 백인우월주의에 가까운 이민편견 정책(무슬림의 미국입국 제한 등)들이 계속 펼쳐지면 무슬림 중 극단주의자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더욱이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면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코리언에 대한 증오심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은 요즘 이슬라모포비아로 떨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 신생아의 50%가 무슬림 자녀다. 프랑스인은 가족 당 평균 1.8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프랑스의 무슬림은 가족 당 8.1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대로 가면 40년 후에는 프랑스가 무슬림 국가로 변한다하여 긴장하고 있다.

백인우월주의가 어떤 비극을 가져왔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그렇고 남아연방의 아파르헤이트는 수많은 흑인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위대한 인권운동가 만델라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는 극소수다. 그러나 미국은 총기소유가 자유화 되어있는 나라다. 한명이 수백명을 죽일 수도 있다. 라스베가스 총기사건이 이를 증명하지 않았는가. 혼자서 59명을 사살하고 910명의 사상자를 냈다.

뉴질랜드 참극의 용의자 태런트가 선언문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백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상징’이라고 칭찬한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트럼프가 백인우월주의자는 아니지만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증거다. 트럼프가 미국사회 분위기를 매우 그릇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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