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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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한여름밤의 꿈

2019-03-08 (금) 12:00:00 정윤희(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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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살아생전 수석에 취미가 있었다. 주말이면 산으로 강으로 돌을 채집하러 다녔고 맘에 드는 돌을 구해오는 날엔 얼굴 가득 행복이 넘쳤다. 아버지의 행복한 취미생활에 엄마는 늘 비협조적이었지만 엄마도 누구 못지 않은 취미가 있었다. 엄마는 보석에 굉장한 관심이 있었고 그 취미를 살려 금은방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엄마 맘에 드는 보석은 당연히 엄마의 것이 되곤 했다.

보석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였냐면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컨디션이 조금 괜찮은 날엔 “서랍에 목걸이 좀 꺼내서 걸어줘 봐” 하고, 몸이 힘들 때는 “만사 귀찮다 다시 서랍에 넣어놔라” 이러길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반복했다. 암투병으로 뼈만 남은 몸에 보석을 목에 건들, 손에 낀들 뭐가 빛나 보일까마는 마지막까지도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싶은 여자였나 보다. 그렇게도 애지중지 아끼는 패물을 돌아가시기 전 “너한테 다 줄 테니 잘 간직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루는 돌아가신 엄마가 서슬이 퍼런 얼굴로 집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보석이 들어있는 안방 장롱을 열고는 내 재킷을 뒤집어 입고 나를 노려보며 나가는 꿈이었다. 그 무서움에 삼복 더위임에도 온몸에 냉기가 도는 공포를 느꼈다. 그 와중에도 번뜩 떠오르는 게 ‘엄마의 보석’이었다. 역시나 장롱 안에 잘 간직해 놓았던 보석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의 심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집을 리모델링했을 당시 잃어버린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딸에게 어떻게 해서든 알려주고 싶었던 거다. 한달이 지나고 나서야 결국은 꿈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보석을 가져간 사람이 안방에 벽지 작업했던 사람임을 직감하고 수소문해서 만났다. 마음 여린 그 사람은 “순간적으로 가져가긴 했지만 무서워서 두번도 못 열어 봤어요”라고 순순히 인정하면서 되돌려주었다. 되돌아온 ‘엄마의 보석’을 맞이했을 때의 심정은 살아 돌아온 엄마를 대하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취미는 분명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힘든 마음을 잠시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난 취미생활로 얻은 행복함이 영혼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꿈을 통해서 알았다. 올해는 나도 취미를 통해 여유와 행복을 찾아봐야겠다.

<정윤희(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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