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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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그리운 친구’

2019-03-07 (목) 12:00:00 방무심 /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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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이 끝난 지 오래되어 일상생활이 편안하고 단순하다고 취침 시간이 일정하거나 마음대로 쉽게 잠들기 어렵다.

엊그제도 선잠으로 인해 뒤늦게 깊은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반갑지 않은 전화벨 소리에 깨어 보니 생각지 않은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비록 꿈속에서라도 반가웠던 한국의 동창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이다.

시간을 보니 이곳은 새벽 두 점 반이고 한국은 저녁 일곱 점 반이다. “야 규현이다.” “어! 그래 규현아 오랜만이다.” “ 여기 미친 녀석들이 너하고 통화하고 싶단다.” “캐나다에서 나온 명수는 네가 잘 시간이라고 전화를 안 하겠다는 것을 내가 하는 거야” “응 그래 괜찮아 바꿔줘”


잠시 후 웃음과 함께 친구 종해의 음성이 들린다. “야! 지금 저녁 시간에 5명이 만나서 맥주 한잔하며 네 얘기하다 전화하는 거야” “반갑다 종해야! 건강하지?” “그럼, 그럼” 항상 낙천적인 성격이 잘 묻어나는 녀석의 너털웃음과 함께 캐나다에서 나온 명수가 잇대어 받는다.

이 친구는 아들이 한국에서 사업하기에 자주 방문하지만, 나의 한국방문과는 엇갈려 아쉽게 만나지를 못했다. “명수야! 샌프란시스코에 오게 되면 꼭 전화해라!” “야 이제 곧 캐나다로 돌아갈 텐데 앞으로는 카톡이라도 자주 하자고” “그럼 그래야지” 그동안 나의 한가한 백수생활에도 카톡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아 친구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같은 한배를 타고 파도를 헤쳐가며 항해하는 언제 봐도 푸근한 동료이고 때로는 말없이 옆에만 있어도 든든한 후원자가 아닐까 한다. 지난번 방문 때는 여럿이서 청계천 시작점에서 끝나는 곳까지 야속한 세월의 빠름을 탓하며 기쁨과 슬픔의 열변을 토하며 걸었다. 중간에 서울에 관광명소인 ‘풍물시장’에도 함께 들러 추억어린 골동품을 보며 옛 시절의 짙은 내음을 맡으니 그 시절로 돌아가고도 싶었다. 청계천 물소리를 들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문득문득 옛날의 판자촌으로 뒤덮였던 어린시절의 청계천이 생각나면서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어느덧 일정을 마치고 출발점으로 돌아오니 저녁 시간이 되어 마땅한 음식점을 예약하고 1시간 정도 커피숍에서 피곤함을 풀었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다고 했던가, 세시간 정도의 산책길에서도 못다 한 이야기를 친구들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이어가다 식당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 중에 으뜸이 한국의 음식문화인데 오랜만에 고국에서 친구들과의 저녁 시간이 즐겁다. 두서없는 이야기 속에 친구란 세월이 흐를수록 음식과 생각도 비슷해가는 가족으로 느껴졌다.

어느덧 바깥의 짙은 어두움이 만남의 쉼표를 알려 주니 따듯한 손을 맞잡으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들은 잠시 후 땅속의 전철 안에서 오늘의 해후(邂逅)를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갈 친구들이다.

그런데 “친구야! 딱 한가지 부탁이 있어.” “언제나 무조건 건강하시게!!“

<방무심 /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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