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웜비어 사건과 북한여행

2019-03-06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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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억류 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미국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낸시 펠로시(민주당) 하원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같은 깡패들을 믿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등 웜비어 사건이 미국 정가에서 다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웜비어 사건이란 버지니아 대학생 웜비어(22)가 2016년 1월 평양 방문 중 호텔에서 선전 현수막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돼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후 억류 17개월 만에 풀려나 2017년 6월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엿새 만에 숨진 사건을 말한다.

웜비어가 호텔 복도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훔쳤다고 치자. 북한이 15년 노동교화형을 부과했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야만적인 조치다. 북한은 2013년 ‘당의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란 법을 제정했는데 그 3절4항은 “백두산 절세위인들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 영상을 모신 작품과 출판선전물, 현지교지판과 말씀판, 영생탑, 당의 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라고 못 박고 있다. 웜비어가 이 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앞으로 금강산 관광이 다시 열리는 모양인데 한인들이 명심해야할 일들이 있다. 금강산을 올라가노라면 곳곳에 북한여성 2명이 철망을 두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김일성이 금강산에 왔을 때 쉬었다 간 자리를 성지화하여 아무도 앉지 못하게 여성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이나 한인들이 호기심으로 이 자리에 앉았다가는 웜비어에게 적용된 법을 위반했다하여 15년 노동형을 받을지도 모른다.

북한관광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규정을 어기면 안된다. 내가 15년 전 평양 취재에서 겪은 가슴 철렁한 케이스는 이렇다. 평양 순안공항 안에 흥미 있는 선전구호들이 벽에 붙어있길래 몇 커트 찍었다. 물론 공항 보안규정에 위반될까봐 지나가는 여자경비원에게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하길래 찍은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 보안요원이 달려오더니 왜 사진을 찍느냐며 카메라를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여경비원에게 물어보고 찍은 것이라며 카메라를 내주지 않았더니 사무실로 연행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이 보안요원은 험상궂은 얼굴로 “사진 다 지우라우”하며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껴 그가 말하는 대로 사진을 모두 지웠다. 그런데 공항사진뿐만 아니라 평양에서 찍은 시내 사진도 다 지우라는 것이다. 너무나 화가 났지만 공포분위기가 압도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웜비어 사건을 보며 나의 평양여행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은 웜비어가 식중독인 보툴리누스 중독에 걸린 상태에서 수면제를 복용한 것이 부작용을 일으켜 사망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신시내티 주립병원은 웜비어 부검 결과 그의 몸에서 전기충격, 펜치 등으로 고문당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의료센터 의료진들은 웜비어의 사인이 고문에 의한 뇌손상이라는 소견서를 제출했다.

미북 관계가 개선되면 미국인들의 북한여행이 쉬워질 것이다. 미국 대학생들은 짓궂은 장난을 좋아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하다가는 웜비어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북한은 상상을 불허하는 비정상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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