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뮬러 보고서’가 뭐 길래

2019-02-28 (목) 박록 고문
작게 크게
‘기다리고 기다리는’ 뮬러 보고서는 결국 나오지 않은 채 2월을 넘기고 있다.

2017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의 제임스 코미 FBI 국장 전격 해임 직후 임명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트럼프의 집중공격을 받아왔다. “마녀사냥! 완전 수치! 불법 속임수!”등으로 대통령에게 얻어맞은 게 무려 1,100여회에 이른다. 뉴욕타임스가 트럼프의 트윗, 연설, 인터뷰 등에서 체크한 집계다.

그러나 자신부터 굳게 입 다문 뮬러의 철저한 함구령으로 워싱턴에선 정말 드물게 한 건의 정보 유출도 없었던 수사팀은 지난 21개월 동안 차근차근 성과를 기록해 왔다. 6명의 트럼프 참모를 포함한 34명을 기소했고 6명 중 5명의 유죄가 판명되었다.


이번 주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는 CNN의 ‘소식통 보도’ 역시 불발로 끝났으나 뮬러의 수사가 거의 마무리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엄습하는 뮬러 먹구름에 더해 어제는 트럼프의 치부를 훤히 알고 있는 10년 지기 ‘해결사’ 마이클 코언의 의회 폭탄증언이 맞물리면서, 트럼프는 ‘잠 못 이루는 하노이의 밤’에 시달렸을 것이다.

뮬러 보고서 제출이 임박하자 보고서의 세 가지 사안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가. 어떤 형식으로 작성될 것인가. 내용은 어디까지 공개될 것인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하려한 러시아와 트럼프 캠페인의 공모 의혹, 이에 대한 FBI의 수사를 막기 원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방해 여부에 집중해온 특검 보고서의 결론을 로이터 통신이 몇 개의 시나리오로 정리 분석했다.

만약 보고서에 트럼프 자신의 공모 시도나 사법방해 증거가 포함된다면, 하원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 정책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 기소를 반대하고 있어 트럼프를 기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측근들은 공모했으나 트럼프 자신은 무혐의라는 결론이 나올 경우,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피해는 있겠지만 탄핵 추진 근거로는 부족하다.

트럼프 측근들의 위법행위가 드러나긴 했지만 러시아와의 공모 혐의에 대한 기소는 아직 한 건도 없었다. 뮬러 보고서가 여기에서 멈춘다면 민주당의 탄핵 추진엔 차질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하원 민주당의 자체조사가 진행되면서 트럼프 재선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뮬러가 어떤 형식의 보고서를 제출할지도 불분명하다. 과거 특별검사들은 장문의 포괄적 보고서를 제출했다. 수사팀이 확보한 증거는 공식 혐의를 제외하고는 보통 공개가 금지된다. 뮬러가 이 규정을 준수한다면 간결한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월스트릿저널은 예상한다. 그것은 수사내용 상당부분이 이미 법정 제출 서류를 통해 공개됐다는 의미다.


현재의 가장 핫이슈는 보고서 공개의 범위다. 보고서가 제출되면 워싱턴 드라마의 주인공은 뮬러 특검에서 윌리엄 바 신임법무장관으로 바뀌게 된다. 특검의 업무는 법무장관에게 보고서 제출로 끝나고, 의회와 일반에게 보고서의 어떤 부분을 삭제하고 어느 범위까지 공개할 것인가는 법무장관의 재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바 장관은 수사 내용에 대해 투명성을 지키겠다고 말했으나 “특검 규정에 따르겠다”면서 전면공개 약속은 하지 않았다. 일반 공개는 아예 안 해도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가 ‘공익’으로 판단하면 공개되는데 그 판단에 몇 주가 소요될 수도 있다.

뮬러 보고서의 전면공개가 불확실해지면서 찬반논쟁은 벌써 불을 뿜기 시작했다. “입증되지 않은 주장들”을 공개하는 것은 공익에 반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해롭다는 전면공개 반대도 확고하지만 한층 뜨겁고 설득력 강한 것은 알 권리를 강조하는 전면공개 촉구다.

러시아 스캔들과 함께 출범한 트럼프의 시대를 사는 미 국민들은 지난 2년 가까이 뮬러 수사에 관심을 쏟아왔다. 알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16년 대선에 러시아가 얼마나 개입했는지, 트럼프 캠페인은 러시아와 정말 공모했는지, 트럼프는 사업상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지, 러시아는 트럼프의 유죄 입증 정보를 갖고 있는지, 왜 그 많은 트럼프 측근들이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했는지, 왜 트럼프는 푸틴을 그처럼 배려하는지…‘사기꾼’ 대통령의 ‘불법행위들’을 폭로한 코언의 증언은 이런 의구심을 넘어 자괴감까지 심어주고 있다.

뮬러 보고서는 이 같은 의심과 불신을 없애줄 수도 있고, 의심의 일부가 사실로 드러났다면 향후 대책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 의혹을 해소시킬 전면공개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미국인의 10명 중 9명도 전면공개를 지지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규정에 따른’ 비공개를 고수할 것이고, 하원 민주당은 경고한대로 뮬러 특검 소환과 증언, 법정 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대망의 뮬러 보고서’ 제출은 특검수사의 종료를 뜻한다. 그러나 결론이 트럼프가 주장해온 ‘무죄 입증’이든, 트럼프 반대자들이 기다려온 ‘유죄 입증’이든 상관없이 보고서가 ‘러시아 스캔들’ 사태의 끝은 아니다. 의회와 전국의 법정으로 진상파악 투쟁이 확산되면서 2020년 대선과 맞물려 한층 치열한 전쟁의 시작이 될 것이다.

<박록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