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노이 선언, 무엇을 담을까?

2019-02-21 (목)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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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선언, 무엇을 담을까?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 소장

다음 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열리는 제 2차 미북 정상회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8개월 만에 다시 만나는 두 정상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비핵화의 물꼬를 틀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비핵화-관계정상화라는 ‘빅 딜’을 이루기는커녕 알맹이 없는 ‘정치적 선언’에 그치는 ‘노딜’이 될 것이라는 회의론이 크다. 일부에선 미국을 위협하는 장거리 미사일에 집중하는 ‘스몰딜’이 나올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하지만 핵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고 정치적 선언 정도로 회담을 마치기에는 양측 모두 부담이 크다.

이번 회담에선 싱가포르에서보다는 진전된 결과가 나와야만 어렵게 만든 대화와 협상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다. 이 부분에선 미국과 북한 모두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즉, 어느 쪽도 판을 깨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빅딜’과 ‘정치적 선언’의 중간수준에서 회담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북 협상은 이전과는 달리 톱다운이라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건-김혁철 실무협상에서 합의안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우려하지만, 실무협상에서는 정상간 논의할 중요의제의 범위를 설정하고 서로의 입장을 최대한 확인을 한 후 최종결정은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 언론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런 저런 예상은 섣부른 추측에 불과하다. 비건 대북 특별대표가 평양 방문에 앞서 지난달 31일 필자가 재직하는 연구소에서 주최한 강연에서 한 연설에서 비교적 분명한 협상 프레임 워크를 제시하였는데, 하노이 회담에선 대략 이 범위 내에서 논의와 협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트럼프와 김정은이 막판 합의를 시도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로 알맹이가 없는 ‘리얼리티 쇼’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두 지도자의 특성상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2차 정상회담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큰 부담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선 내년에 대선정국으로 들어서면 북한이슈에 집중하기어렵고,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야당의 정치공세도 더욱 거세질 것이므로 협상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의 합의 즉 정치적 공간(political space)을 만들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 또한 고민이 깊을 것이다.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단아’이기에 가능했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 합의한 사안들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로 이어질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한 사안조차도 의회의 비준이 필요한 것들은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쉽게 통과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지난 2000년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합의한 사안들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휴지조각이 되었던 경험을 북한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의 정치력이 중요한데 지금 워낙 여러 이슈에서 야당과 각을 세우고 있고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몰리고 있어서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진 않다.

한반도는 영구적인 평화체제가 들어서느냐 아니면 다시 대결과 갈등의 장으로 돌아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스캔들로 얼룩진 채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마다 않는 트럼트 대통령이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그의 대북 외교적 노력에는 한인사회도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싫다고 해서 그의 대북정책마저 무조건적으로 비판해선 안 된다. 대북 군사행동이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더 나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번 회담이 열리는 베트남은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했던 나라이고, 베트남의 개혁 개방은 북한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베트남 모델이 가능했던 것은 적대국이었던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덕분이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과연 북한도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정상화를 통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까. 김위원장은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바란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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