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구스만 재판과 부패공화국

2019-02-20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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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관광객에게 돈을 뜯어가는 나라가 있다면 믿어질까. 나는 그런 광경을 두 번이나 목격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이집트에서였다. 단체여행으로 카이로의 어느 교회 앞을 지나는데 경찰관이 우리를 계속 ?아오더니 가이드를 옆 골목으로 데리고 갔다. 거리가 빈민가라 가이드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가이드가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경찰관이 당신을 왜 연행했느냐”고 물었더니 돈을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얼마 주었느냐”고 물었더니 “5달러를 주었다”고 했다. 경찰관이 관광객을 보호해도 시원찮은데 돈을 요구해? 미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상상이 안 되는 일이었다. 왜 고발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고발해봤자 해결되지도 않거니와 자신은 가이드라 그들을 자주 보기 때문에 보복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나 자신이 서울서 온 손님을 태우고 멕시코 관광을 안내합네 하고 티화나에 갔을 때였다. 어느 거리를 돌아서는데 멕시코 경찰관이 우리 차를 세우더니 보내주지를 않는다. 15분 정도 지나자 서울친구들이 불안해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 경찰관에게 주었더니 가도 좋다고 했다. 티화나 관광기분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정이 떨어져 그다음부터는 다시는 티화나 관광을 가지 않는다.


엊그제 뉴욕에서 역사적인 재판이 열렸다.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별명 엘 차포)이 10개 항목에 걸쳐 전부 유죄평결을 받았다. 아마도 그는 남은 생을 미국감옥에서 지내게 될 것 같다. 구스만의 재판은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았다. 멕시코 감옥에서 두 번이나 탈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를 인계받은 미국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삼엄한 경비 속에 그의 재판을 열었다.

그런데 구스만 재판 과정에서 신기한 화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구스만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추적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위해 지난해 임기를 마친 엔리케 니에토 대통령에게 1억 달러의 뇌물을 건넸다는 것이다. 니에토 대통령은 물론 이 사실을 부인했으나 구스만의 부하들 중 여러 명이 이는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구스만이 교도소 화장실 밑을 뚫고 지하터널로 탈출하기위해 교도관들에게 준 뇌물이 250만 달러라는 것, 멕시코의 수많은 고급 장교와 경찰간부들 - 심지어 주지사까지 구스만 기습작전을 구스만 측에 미리 알려줘 구속되거나 파면되었다는 것, 구스만과 그의 오른팔 부하 촐로 이반이 죽인 카르텔 경쟁자는 3,000여명이나 된다는 것, 티화나에서만 지난한해 마약전쟁으로 2,512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멕시코 전국에서는 연간 3만 여명이 마약전쟁으로 희생) 등등 기가 막힌 자료들이 밝혀졌다.

심지어 구스만의 변호인인 제프리 릭트먼은 시날로아 카르텔(마약거래 규모가 가장 큰 조직)의 두목은 구스만이 아니라 이즈마엘 삼바다인데 그가 구스만을 제거하기위해 당국에 구스만의 은신처를 밀고한 것이며, 삼바다는 멕시코의 전 현직 대통령들에게 수억 달러의 뇌물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구스만 재판은 멕시코가 대단히 부패한 국가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문제는 구스만이 그의 화려한 생활과 빈민구제로 멕시코에서는 영웅시 되고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부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구스만을 주제로 한 마약전쟁 영화가 여기저기서 제작되고 있다. 부패공화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기현상이다.

미국의 바로 이웃에 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은 정말 걱정스런 일이다. 치안이 안정될 때까지 당분간 티화나에는 한인들이 관광 가는 것을 말리고 싶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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