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융시장과 북핵 문제의 비즈니스 논리

2019-02-07 (목)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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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과 북핵 문제의 비즈니스 논리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중국에서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한 한국인 지인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2차 미북 정상회담과 미중 무역전쟁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그러면서 현재 금융시장 내부의 분위기는 미중 무역전쟁도 미북 핵협상도 ‘다 해결된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2차 미북 회담은 작년 싱가포르회담 이후 생긴 비판에 대한 ‘학습 효과’가 있어 이번엔 ‘소박하나 실질적 성과(modest but concrete results)’가 있을 테고, 트럼프는 이것을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선언할 것이지만, 워싱턴 주류 엘리트들과 미국 싱크탱크의 전문가 집단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경우, ‘봉합 후 다시 악화’, 그리고 다시 봉합 그리고 다시 악화, 이러한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하향평준화’ 포물선을 그리며 당분간 미중 갈등 악화의 길로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후, 필자의 ‘개인적 생각’임을 강조했다.


북핵문제와 금융시장은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영역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종종 금융권에 있는 지인들, 그리고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의 ‘상공회의소’ 등 비즈니스 단체 등으로부터 북핵 관련 한반도 지정학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런 자리에 가보면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즈니스 중역들이다.

바쁜 재계 인사들이 굳이 시간을 들여 딱딱한 국제정세 얘기를 듣고자 하는 이유는 비즈니스와 북핵 문제 지정학 간에 무엇인가 밀접하게 연계된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2006년 10월 북한이 첫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 미국 경제지의 베이징 특파원이 본사의 지시를 받아 한 가장 첫 일은 안보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건의 예상 파급효과 정도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외국인 투자가의 눈에 한반도는 항상 ‘화약고’이고 리스크를 내포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그 기자는 전문가들의 초기 반응이 비교적 차분한 것을 보고 기사 제목을 ‘별일 없겠다 (business as usual)’로 달아서 초고를 데스크에 보냈다가 고참 기자한테 핀잔을 들었다. “제목을 그렇게 달면 누가 신문을 사서 보겠느냐?”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놀라지 않았지만 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뭔가 놀랄만한 새로운 소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한 대학에 근무하는 외국인 교수도 다국적 금융단체가 일본에서 개최한 아태지역 모임에 초청을 받아 북한 강의를 하고 왔다. 금융업계가 정치학자를 불러 한반도 ‘지정학 컨설팅’을 받은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 미국정부는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펼쳤는데, 사실 이는 미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중요성을 두지 않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북한 문제는 미국의 전략적 관심순위에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당시 미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와 이와 관련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사뭇 놀라운 말을 했다. “북한에 석유만 났어도 우리가 북한 문제에 더욱 적극적일 텐 테.”


결국, 북한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금융계 인사들이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나,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는 ‘이익관계’와 결부되는 측면이 있다.

이점에서 (전임 미국 대통령들과 달리) 북핵 문제에 큰 관심을 갖는 트럼프 대통령이 종종 북한을 언급할 때마다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economic potential)’을 언급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비즈니스맨 출신의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심 ‘앵글’이 엿보인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견인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 해결이 미국에 어떠한 ‘이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려가 들어가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이 한반도 사람들에게는 당위적인 문제이지만 바다 건너 국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에 풍부한 지하자원 매장량이나 석유 매장량의 객관적 수치화를 하거나, 혹은 나이키 신발을 만들 때 공장을 중국이나 베트남이 아닌 북한에 지을 경우 하루 생산량, 인건비 등을 비교해서 미국회사에게 얼마나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는지 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에도 미국 참여를 적극 견인하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길이다. 과거에 북한 문제를 ‘지정학’적 접근방법으로 시도해보다가 실패했다. 트럼프는 과거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도 북핵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특히 북한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지경학’적 접근법을 써볼 때이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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