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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지휘자는 왜 장수하는가

2019-01-29 (화) 03: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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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주(첼리스트)

가장 장수하는 직업 중 하나가 음악 지휘자라고 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81세, 로린 마젤은 84세까지 지휘봉을 잡았고, 평균 수명이 더 짧았던 시대에도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95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90세까지 살았다. 올해로 77세인 지휘자 대니얼 바렌보임은 은퇴는커녕 인생의 절정기를 구가하는 모습이다.

의사들은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유연성을 길러주며 엔도르핀을 증가시킨다고 설명한다. 지휘봉을 휘두르는 것이 일종의 운동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휘는 치매 예방에 가장 좋다는 뇌 움직임과 섬세한 손놀림을 포함하고 있다. 한눈에 수많은 악기 스코어를 훑어 내려가야 하고 봉 끝으로 쉴새없이 세밀한 사인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휘자의 높은 연봉 또한 여유로운 노년기를 통해 장수에 기여했을 것이다.

첼리스트로 살다가 40대에 지휘를 하게 된 나는 지휘자가 장수할 수밖에 없는 또 한가지 이유를 찾았다. 지휘는 무척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나름 첼리스트로 활약하면서 음악을 즐기며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연주를 벗어나 지휘봉을 잡고 보니 그동안 내가 꽤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첼로를 켰다는 것을 발견했다.


악기 연주가 완벽함을 향해 끝없이 긴장해야 하는 것이라면 지휘는 그야말로 재미있는 놀이였다. 무대에서 흥에 겨워 마음껏 활보하는 일이라고나 할까? 이런 느낌은 미숙한 연주자들을 데리고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곡이 만들어질 때에도, 장시간의 연주 후에도 전혀 피곤함 없이 찾아왔다. 즐겁게 몰입한 마음이 겉으로도 드러났는지 친구는 내가 춤추듯 지휘한다고 한다. 눈을 감고 춤추었던 카라얀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했는지 모르지만, 로린 마젤의 지휘를 ‘거만한 유희”라고 했던 세간의 평이 생각나기도 했다. 거액 연봉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미나게 한바탕 놀았을 뿐인데 샐러리까지 주어진다니.

지휘자의 길을 가기로 한 나의 결심은 아무리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장수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다는 행복 예감 때문이다. 물론 장수라는 보너스 선물도 기대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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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씨는 베이지역 쏘넷앙상블 첼리스트로 활동중이다. 백석대학원 전공지도 교수와 경희대학교 평생교육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백석테힐라 앙상블, 익투스 청소년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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