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같은 그대 눈빛’ 음원 발매
▶ 젊은 시절 음악 동료 미주한인 유혁씨 복원
고 유재하의 유작을 복원해 발표한 유혁(왼쪽)씨와 발매된 음원 표지. [유혁씨 제공]
1987년에 발표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2018년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위에 선정되면서 대중음악 사상 가장 중요한 단일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25세의 짧은 생애에 8곡이 담긴 단 한장만의 앨범을 남겼음에도 한국형 발라드는 그의 전과 후로 나뉜다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싱어 송라이터 고 유재하 가수의 이야기다.
유재하가 불렀지만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별 같은 그대 눈빛’이 지난 11월 한국에서 음원으로 출시됐다. 이 노래를 학창시절 함께 음악을 했던 미주 한인 유혁(63)씨가 AI 기술로 복원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뉴욕에 거주하는 유씨는 “한살 터울인 재하가 한양대 작곡과 재학 시절 내 동생 욱상이와 친하게 지내면서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자주 어울리곤 했는데, 셋이 모이면 팝과 록 음악을 같이 듣고, 그러다가 당시 책방에서 많이 팔던 소위 ‘팝송 책’을 넘겨가며 노래를 불렀다”고 회고했다.
유혁씨와 유욱상씨 형제는 이미 레모네이드라는 대학생 밴드를 결성해 대학가요제, 젊음의 행진 등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았던 뮤지션들이었다. 1982년 겨울 밤 늦게 유재하가 유혁씨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다음 날 어느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캠퍼스 싱어로 초대받아 출연하게 됐는데 레모네이드 밴드가 만든 노래 중 통기타 반주로 간단히 부를 수 있는 곡을 하나 골라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팀에서 키보드를 맡고 있던 한석우라는 친구가 만든 ‘별 같은 그대 눈빛’이라는 곡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전화로 곡과 가사, 코드를 가르쳐주고는 알아서 연습하라고 했죠.”
다음 날 밤 집에서 유재하가 라이브로 부르는 걸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다. 그 곡은 1981년도 작품 치고는 꽤 세련되게 나와서 당시 들국화에서 활동하던 최성원 등 탐내는 뮤지션들이 많았다. 하지만 유재하만큼 그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서 부른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고 유혁씨는 회상했다.
유혁씨는 1983년 미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음악과는 한동안 멀어졌다. 반면 유재하는 조용필 밴드에 키보드 주자로 들어가 본격적인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 그때 발표된 노래가 ‘사랑하기 때문에’다. 이후 유재하는 김현식 밴드로 자리를 옮겨, ‘가리워진 길’이라는 곡을 세상에 알렸다.
“유학 중 잠깐 한국에 나왔을 때 재하는 이미 솔로 앨범의 녹음 작업을 마친 뒤였어요. 동숭동 재하네 집에 내 동생을 비롯한 우리 밴드 멤버들이 그의 노래를 하나하나 들으며 많은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이 앨범에 실린 곡 중에서 유혁씨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보사노바 풍으로 작곡한 ‘우울한 편지’다. 하지만 유재하는 1987년 첫 앨범이 발표되고 불과 몇달 만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고, 불행히도 그의 목소리는 음반에 수록된 8곡의 노래 만을 통해 남아 있을 뿐이다. 40여년 동안 뉴욕에서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로 일하던 유혁씨는 2023년초 그간 잊고 있었던 유재하의 노래가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트랙을 현대기술로 재생해 보기로 마음먹게 됐는데 녹음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기타 반주를 입히기 위해 우선 보컬과 원래의 기타 반주를 분리하는 작업부터 해야 했다.
“1년여가 걸린 모든 엔지니어링 작업은 안동환 프로듀서가 했는데, AI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컬과 기타를 분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I는 목소리를 새로 창출하는 용도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표된 음원은 스무살 유재하 본연의 목소리만을 담고 있지요.”
새로운 기타 반주는 유혁이 직접 연주해 녹음했다. 아날로그 감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1980년대 제작된 기타를 손질해 원래의 스트로크 스타일과 강약을 유지하면서 마치 유재하가 기타를 다시 친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음원 발매 이후 유혁씨 형제와 유재하 사이의 인연은 한국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년 1월15일에는 인기 예능인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도 예정돼 있다. 팬데믹 이후 틈틈히 음악작업을 해 왔던 유혁씨는 2025년 1월16일 풀밴드 버전으로 ‘별 같은 그대 눈빛‘를 자신의 노래로 발표할 계획이다.
“재하가 묻혀 있는 용인 천주교 묘지에는 아직도 누군가 꽂아 놓고 간 꽃들이 있어요.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 속에 재하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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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