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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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고마워요, 사랑해요

2019-01-17 (목) 07:25:29 손화영(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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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냄새가 난다. 나는 계절의 냄새를 특정 기억으로 맡는다. 봄은 따뜻한 바람과 봄꽃 향기가 시작을 알리는 설렘의 냄새로, 여름은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활기찬 기운이 가득한 가슴 벅찬 냄새로, 가을은 뒷마당 사과나무의 누렇게 익은 사과를 가장 좋아하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슬픈 사과 냄새로 그리고 겨울은…3년 전 가장 추웠던 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슬픔으로 기억되어 춥고 매서운 겨울바람 냄새로 떠올린다.

이별을 많이 겪는 나이가 되었다. 익숙한 이별은 없는 것을 보니 이별은 준비한다고 해서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눈물이 흐른다. 햇볕이 좋은 날 아침 산책을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이 좋은 날을 함께 누리지 못한 아버지가 그립다. 거울 속의 내 얼굴에서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는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아버지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한(恨)’이 밑바탕에 깔린 조선의 민속악처럼 나는 가야금으로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매우 능숙하다. 그 슬픔은 그동안은 가야금 연주를 위한 정체 모를 슬픔이었다면 최근 세 번의 겨울을 겪으며 ‘아버지’라는 단어와 함께 좀 더 실체가 있는 슬픔으로 변했다. 아직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이 종류의 슬픔은 아직은 쉽사리 발산할 수가 없다.

한국음악은 유달리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기쁨이나 사랑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감정일 것이다. 김죽파 선생님은 남도민요의 흥타령이 바위에 머리를 짓이겨 죽고 싶을 정도로 슬픈 음악이라고 하셨고, 황병기 선생님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음악 즉, 슬픔을 잡아먹고 나오는 기쁨을 평생 음악으로 그리고자 하셨다. 나는 다만 나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가장 큰 후원자, 내 음악을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신 아버지, 내가 길을 잃었을 때도 내 길을 버렸을 때도 내가 가는 길을 항상 지지해주신 아버지께, 또 언제나 그랬듯 내가 가는 길을 멀리서 지켜보고 계실 것 같은 아버지께 내 음악이 당신의 영혼을 위로하고 어루만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겨울 냄새와 함께 아버지가 무척 보고픈 날, 맘껏 하지 못했던 말을 뒤늦게나마 해본다. “아빠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손화영(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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