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낸시 펠로시의 주먹

2019-01-09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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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등소평이 미 의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등소평은 하원의장 팁 오닐에게 자신이 백악관 회담에서 카터 대통령과 미중 양국의 난제를 해결하는데 합의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팁 오닐 하원의장은 등소평에게 “미국의 힘은 백악관에서 나오지 않고 의회에서 나온다”며 의회의 동의 없이는 대통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정부 체제의 특징을 설명했다. 등소평은 이 설명을 듣고 미국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미 의회-특히 하원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업무를 제대로 집행할 수가 없다. 국회가 청와대의 시녀처럼 되어있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3권 분립이 철저히 되어있는 나라다. 한미방위조약도 한반도 유사시 미 대통령이 군대를 파견할 수 있지만 반드시 의회의 동의를 얻도록 못 박혀있다.

미국의회는 상원(100명)과 하원(435명)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중요한 안건은 하원에서 이루어진다. 하원의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분과위원장들을 임명하는 동시에 의회에 상정되는 법률안을 통제한다. 하원은 또 공무원을 탄핵할 수 있다. 가장 전설적인 하원의장은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당시 민주당의 샘 레이번으로 꼽힌다. 그는 두 번이나 하원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원자탄 제조 프로그램인 ‘맨해턴 프로젝트’를 의회에서 의원들의 질문 없이 통과시킨 전설적인 인물이다.


대통령과 하원의장이 당이 다르면 대통령은 정말 피곤해진다. 가장 유명한 예가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과 민주당의 팁 오닐 하원의장이다. 입담 좋은 팁 오닐은 할리웃 출신인 레이건을 사사건건 우화화하여 망신주는 바람에 레이건은 팁 오닐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였다.

팁 오닐의 레이건 못살게 굴기가 어느 정도였는가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팁 오닐 의장은 보스턴 심포니를 육성하기위해 해마다 보스턴 심포니에 도네이션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을 디너에 초대하는 전통을 만들어 놓았다. 어느 해 60세 넘은 남자가 당첨되어 팁 오닐은 그가 어떻게 그 경쟁을 뚫었는지 물었다. 이 남자는 팁 오닐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you are son of bitch! 왜 레이건 대통령을 못살게 구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하기위해 돈을 모아 보스턴 심포니에 도네이션 한 것이다”라고 말해 디너 분위기가 엉망이 된 적이 있을 정도다.

이번에 하원의장에 선출된 낸시 펠로시도 팁 오닐 못지않은 민주당 전투형 강경파다. 공화당이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민주당 지도자다. 오죽하면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선거구호 중 하나로 “펠로시를 해고하라”를 택했을까.

32년 간 연방하원의원을 지내고 있는 78세의 펠로시는 미국역사상 최초로 하원의장에 선출된 여성 정치인이며 샘 레이번에 이어 두 번 하원의장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에서 가장 집값이 비싸다는 샌프란시스코의 퍼시픽 하이츠에 살고 있는 펠로시는 억만장자이며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최고급으로 소문나 있다. 그가 하원의장에 선출되자 공화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펠로시와 트럼프의 대결은 팁 오닐과 레이건의 대결 못지않은 갖가지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

펠로시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나는 여자이지만 주먹을 어떻게 휘두르는가는 잘 알고 있다”며 트럼프와의 빅 매치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와 펠로시 두 사람 모두 개성이 강하다. 누가 이길까. 지금까지의 예를 보면 하원의장을 이긴 미국대통령은 없었다. 펠로시 때문에 트럼프가 남은 임기를 힘들게 채울 것 같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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