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아버지의 어깨
2019-01-05 (토) 12:00:00
메이 최(UC버클리 학생)
친정 식구들과 강원도 홍천에 있는 ‘비발디파크’라는 관광지에 여행을 왔다. 이곳은 실내 키즈카페, 실내 물놀이장, 실내 놀이공원,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스키장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처럼 3대가 함께 여행을 와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할 수 있다. 한국의 추위를 맛본 후, 집에 있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은 오랜만에 집에서 탈출할 수 있는 그야말로 ‘꿀’ 같은 기회였다.
그런데 여행 2일차가 돼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번 여행이 아빠에게는 참 고단한 여행이라는 것을... 저녁 6시도 채 안 된 시간에 아빠가 코를 골며 소파에서 낮잠이 들었다. 그 상황이 재미있는지 두살배기 아들은 외할아버지의 한쪽 양말을 벗겼고, 발뒤꿈치가 쩍 갈라진 아빠의 발이 드러났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통증이 꽤 심한 것이 분명했다.
지난 이틀 간 아빠는 저런 발로 참 많은 것을 하셨다. 새벽에 줄을 서서 늦둥이 중학생 아들의 스키레슨 순번을 받았고, 경치가 좋은 객실을 받기 위해 번호표를 또 받아야 했다. 눈만 뜨면 여지없이 외손자가 선물하는 냄새나는 기저귀를 갈아주셨고 식구들이 부르면 실내 물놀이장으로, 실내 키즈카페로, 스키장으로 달려와 지원해야 했다. 모든 식구는 편하게 카드를 쓰며 먹고 마시고 오락을 즐겼지만 몸에 밴 아빠의 습관은 여행지에서도 여전했다. 아빠는 오늘도 집에서 가져온 햇반과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셨다. 언제나 아빠는 누구도 모르게 자기를 희생하며 다른 식구들이 조금 더 편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큰 울타리 같은 존재였지만 왠지 이번 여행에서 이런 아빠의 모습이 많이 속상했다.
아빠는 늘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여서 나이가 들어가고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빠가 늘 한결같은 지원군이었던 만큼 이제는 식구들이 아빠의 지원군이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힘들다, 아프다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아빠를 위해 식구들이 조금 더 세심하게 아빠를 살펴야겠다. 아빠 어깨 위에 있는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비발디파크’에서 2019년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면서 난 비로소 아빠의 가족을 향한 깊은 사랑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아빠의 희생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이젠 이런 아빠를 지키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메이 최(UC버클리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