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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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마음의 안식처

2019-01-01 (화) 12:44:23 최은영(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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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테크기업들이 있는 실리콘밸리, 한국에서 휴대폰 개발을 하던 나로서는 이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신이 나는 일이었다. 구글이나 애플 본사가 있는 동네를 지날 때면 그 회사 이름이 쓰인 이정표를 사진으로 찍기도 하며, 첨단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이 가장 먼저 출시되는 이곳에서 그 스마트한 기운을 느끼면서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최근 자율주행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정교함과 발전된 기술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의 수고를 다하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는, 공상과학 영화에 나왔던 그런 시대가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책을 구하려면 한국 다녀오는 길에 구해 오거나 비싼 배송비를 지불하고 받아야 했지만, 요즘은 전자책으로 쉽게 내 휴대폰에 내려받아 읽을 수 있다. 종이로 된 책을 선호하지만, 수많은 책들을 잘 보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공간을 차지하거나 무게를 더하지 않는, 전자기기 속 가상의 공간만을 차지하는 전자책의 간편함에 혹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요즘 누리고 있는 첨단기술의 이기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새로운 생활방식을 금방 배우고 잘 적응하고 있다 자부하지만, 손가락 터치 하나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요즘, 어쩐지 나는 점점 더 옛 방식의 것들에 마음이 쓰인다. 다양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의 스웨터들을 쉽게 살 수 있는데도, 캘리포니아처럼 따뜻한 곳에서 뜨게질 같은 것들이 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다. 어린시절 거추장스럽다고만 생각했었던, 엄마께서 떠 주셨던 투박한 털조끼가, 엄마의 정성과 수고가 들어있던 그 옷들이 또 그리워지는 것이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던지,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엄마께서 하시던, 손이 많은 일들을 똑같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처음으로 반나절 너머 걸려 소뼈를 끓이면서, 어릴 때는 투정부리면서 먹던 그 냄새가 정겹고 고소하게 느껴지고 그리운 엄마 생각을 한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린시절의 아늑함을 떠올리고 마음의 안식처로 삼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따뜻한 이불을 덮고 앉아 복실복실한 털실을 손가락에 걸고 뜨게질을 한다. 어릴 적 나의 할머니처럼, 엄마처럼,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 옛날부터 똑 닮은 그 모습으로.

<최은영(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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