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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화산이 빚은 신비의 섬… 황홀경에 취하다

2018-12-28 (금) 글·사진(울릉도)=우현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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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바위·투구봉·대풍감·삼선암, 해안도로 따라 기기묘묘한 절경이

▶ 높이 430m 위용 뽐내는 송곳봉, 8개 구멍 통해 보는 하늘도 신비

울릉도는 먼 섬이다. 어떤 면에서 제주도보다도 멀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서울을 기준으로 제주도가 울릉도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제주는 시내버스 배차 간격보다 촘촘한 비행기 편이 있어 주말만 아니라면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반면 울릉도는 얘기가 다르다. 태백산맥을 넘어 후포나 묵호로 가야 여객선을 탈 수 있고 관광 비수기인 겨울에는 그나마 포항을 제외하면 육지의 모든 배편은 끊기고 만다. 울릉도는 역시 작심을 해야만 갈 수 있는 섬이라 할 수 있다.

울릉도에 가기 위해 보름 전 휴대폰에 애플리케이션을 하나 깔았다. 날씨와 기온은 물론 풍속과 풍향까지 실시간으로 조회가 가능해 2~3일 안에 울릉도 입도(入島)가 가능한지 대충은 예상할 수 있는 앱이다. 수시로 앱을 보면서 택일을 한 끝에 드디어 날을 잡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저녁을 먹고 버스를 탔다. 동절기에 울릉도로 가는 배는 포항에만 있는데 오전9시5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수도권에서는 하루 전에 떠나야 한다.

자정이 다 돼 포항에 도착해 여객터미널 근처에서 잠을 자고 배를 탔다. 배가 내항을 벗어나자 물결이 높아졌다. 배는 물결과 미세먼지를 헤치고 동쪽으로 나아갔다. 출발 후 2시간 정도는 괜찮았지만 입도 1시간을 앞두고 파도가 높아졌다. 너울을 타고 배가 흔들리자 미약한 멀미 기운이 느껴졌다. 멀리 울릉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속이 진정되는 듯했다.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울릉도 도동항은 그때에 비해 모습을 일신했지만 비좁은 도로와 골목은 여전했다. 섬의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지 10분도 안 돼 사동항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넓은 부두에 접안시설이 잘 갖춰져 있길래 “이 좋은 항구를 왜 놀리고 있느냐”고 동행한 박순덕 해설사에게 물었더니 “이미 도동항에 상권이 형성돼 있어 단숨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후포 등에서 오는 여객선 몇 편은 사동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섬 북쪽의 관음도까지 이어진다. 관음도로 가는 동안에는 거북바위·투구봉·대풍감·송곳봉·죽암몽돌해안·삼선암 등 기기묘묘한 지형들이 줄을 지어 나타난다. 이들은 땅 아래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된 후 찬 공기에 노출되며 굳어 형성된 것들인데 비슷한 과정을 거친 제주도의 지형과는 사뭇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의 화산암은 점성이 낮아 물처럼 흘러내리며 완만한 경사의 산지로 굳어진 반면 울릉도의 화산암은 점성이 높아 표면이 빨리 굳어지며 기기묘묘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화산암은 용암에 포함된 산화규소의 함량에 따라 현무암·조면암·포놀라이트(phonolite) 등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다양한 화산암으로 이뤄진 울릉도는 국내 최초 지질공원으로 지정됐을 만큼 여러 형태의 바위와 절벽·동굴들이 넘쳐 난다. 그 중 송곳봉은 430m의 암벽으로 마그마의 통로인 화도가 굳어 형성된 바위다. 뾰족한 봉우리가 송곳을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 붙은 이름으로 표면에는 다양한 형태의 절리를 볼 수 있다. 송곳봉이 눈길을 끄는 것은 옥황상제가 사람들을 낚아 올리기 위해 뚫어놓았다는 구멍 여덟 개가 있기 때문이다. 평지를 뚫고 하늘을 찌르는 봉우리의 모습도 웅자(雄姿)지만 봉우리에 뚫린 구멍을 통해 보이는 파란 하늘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섬 풍광들을 둘러보며 관음도에 도착하자 날이 어두워졌다. 퇴근을 서두르는 매표소 직원을 달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섬을 일주했다. 관음도로 들어가는 다리 난간에서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바다와 섬은 미세먼지에 뒤덮여 수평선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박 해설사는 공사가 한창인 관음도 앞 터널을 가리키며 “이달 24일 섬 일주도로가 임시로 개통된다”며 “내년 3월이 되면 정식 개통돼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지 250년 만에 울릉도를 돌아볼 수 있는 도로가 완성되면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지 않고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게 되고 추진 중인 공항까지 완성되면 울릉도 관광이 수월해져 관광객의 숫자는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다음날 이른 새벽 짐을 챙겨 저동항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추위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는 찰나 저 멀리서 구름을 뚫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의 모습이 보였다. 붉게 타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내년에도 우리 모두의 일상에 행복과 평안이 깃들기를 소망했다.

<글·사진(울릉도)=우현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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