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폴레옹과 헬렌 켈러

2018-12-26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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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한 번씩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세월이 덧없다는 소리도 이맘때면 자주 듣는다.

그러나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일 뿐이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앞 못 보는 헬렌 켈러는 삼중고를 겪으면서도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고백을 남겼다. 두 사람의 삶의 고백에는 왜 이같은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과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 그 차이뿐이다. 감옥이라도 감사를 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다”고 일본의 사업가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말한 적이 있다.

폴란드의 오슈비엥침이라는 지방에 가면 아우슈비츠 나치수용소가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3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량학살 전문시설을 갖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가 가장 악명이 높다.

비르케나우에는 하루 수 천명씩 죽일 수 있는 개스실이 있는데 나치는 자신들의 잔학행위가 후일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곳에서 부역하던 유대인 600여명도 죽이기로 했다. 이를 알아챈 유대인 부역자들은 종전에 가서야 개스실을 폭파해 버렸는데 여기에는 폭탄을 치마에 숨겨 나른 유대인 여성들의 눈물 나는 투쟁비화가 숨겨져 있다. 결국 개스실이 폭파된 후 부역자 전원이 사형 당했다.

유대인들이 나치수용소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몰랐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패전국 채무이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전후사정을 이용해 더 부를 축적하고 잘 먹고 잘 살았다. 가진 것을 나눌 줄 몰랐던 것이다. 독일 국민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 후일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오늘의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자선을 많이 하는 민족으로 탈바꿈 한 것은 나치수용소에서 얻은 뼈아픈 교훈의 영향이 크다.

우리가 지닌 가장 잘못된 자세 중의 하나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행복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소유 욕심에는 끝이 없다. 아이들은 무엇을 많이 사줄수록 감사하기는커녕 더 불만을 나타내며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60년대는 가난 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았다. 그 희망으로 배고픔을 이겼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배는 부른데 희망을 잃고 있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데 자신을 더 불행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불행은 결핍에 있기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감에서 온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에서 생긴다.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다. 행복은 feeling이기 때문에 어떤 그릇에 담느냐가 중요하다. 행복과 불행의 사이즈는 없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행복의 장애물은 지나친 기대다. 감사할 줄 모르면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 나폴레옹과 헬렌 켈러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행복과 불행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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