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바마케어가 사라진다면…

2018-12-20 (목) 12:00:00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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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케어처럼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속 시달려온 현행법도 드물 것이다. 입법 직후 8년여 동안 공화당 의원들이 시도한 폐지 표결만도 수십 차례다. 특히 지난 2년 입법·사법·행정부를 장악한 공화당 천하에서 전방위로 확산된 보수진영의 끊임없는 공격에 상처입고 비틀대며 힘겹게 살아남은 오바마케어가 지난주 ‘위헌’ 판결로 다시 일격을 당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러나 인기도 많은 오바마케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거의 모든 미국인이 그 후유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약 2,000페이지에 달하는 오바마케어, ‘감당 가능한 의료법(ACA)’은 이미 누구나가 영향을 받을 정도로 미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을 대폭 재편해왔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가해질 피해의 대상이 폐지 첫 해에 보험을 잃게 될 직접 수혜자 1,900만 명을 훨씬 넘어선다는 뜻이다.


기존 병력을 가진, 많게는 1억3,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입자들이 보험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할 것이며 26세 까지의 성인자녀가 부모의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현재의 혜택도 없어진다.

“난 직장보험이 있어서, 난 메디케어를 받는 시니어라서, 난 중산층이라서…” 무보험 저소득층을 위한 오바마케어의 덕 본 것 없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바마케어가 사라진다면 연간 자기부담 보험료의 상한선도 없어지고, 보험사가 평생 지불하는 보험금 상한선이 다시 적용될 것이다. 피임약 처방에서 유방암과 콜레스테롤 검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무료혜택도 잃을 것이다. 1억7,000만 직장보험 가입자들과 6,000만 메디케어 가입자들에게도 큰 보호가 되고 있는 오바마케어의 조항들이다.

메디케어 어드밴티지 플랜으로 불리는 파트C 가입 시니어들의 경우 처방약값 인하와 무료 예방케어, 공동부담 인하 등으로 가능했던 1인당 연평균 700달러씩의 절약도 함께 사라진다.

캘리포니아에선 ‘메디캘’로 불리는 저소득층 지원 메디케이드도 오바마케어로 확대되었다. 무보험자 구제 뿐 아니라 미 전국을 휩쓸고 있는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중독현상 대처도 메디케이드가 그 중심 재원이었으니 당연히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종전엔 파트타임으로 간주되어온 종업원도 지금은 주 30시간 이상 일하면 직장보험이 제공된다. 오바마케어가 사라지면 이들 중 상당수가 보험을 잃을 것이다…

텍사스주 연방지법 리드 오코너 판사가 14일, 수천만명에게 이같은 ‘악몽’을 초래할 오바마케어 무효화를 선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반응은 “미국에 위대한 뉴스!”라는 환영이었다. 하긴 오바마케어 폐지를 천명하고 취임 후 오바마케어 예산 대폭 삭감에 더해 지난해 말 세제개혁안에 오바마케어 핵심조항 폐지를 얹어 통과시킨 트럼프이니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판결이 상급법원에서 번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텍사스를 비롯한 20개의 공화당 주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보수의 숙원을 풀어준 오코너 판사는 오바마케어의 핵심조항인 의무가입이 세제개혁 때 벌금 폐지로 무효화 되었으니 오바마케어 합헌성의 근거도 없어졌다면서 의무가입 조항 뿐 아니라 법 전체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법 전문가들의 시각은 오코너의 법적 근거에 대해 회의적이다. 헬스케어법의 최고 권위로 꼽히는 예일 법대의 애비 글럭,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법대의 조나단 애들러, 미시간 법대의 니콜라스 베이글리 등 교수들은 다수의 미디어들과의 인터뷰 및 기고를 통해 오코너의 오바마케어 법 전체에 대한 위헌 판결의 근거가 ‘허약’한 것을 지나 ‘비정상적’이기까지 하다고 비판했다.

오바마케어 지지자들이 아닌 이들은 어떤 법의 한 부분을 ‘위헌’으로 판결할 경우 그 법의 나머지 부분은 ‘의회가 확실하게 표명하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된다는 분리의 원칙을 강조했다. 벌금을 폐지하면서 나머지 부분을 그대로 둔 것이 의회의 의지이며 법원이 추정해 확대 해석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들을 비롯한 상당수 전문가들은 위헌 판결이 설사 항소심에서 유지된다 해도 이미 2번이나 오바마케어 합헌 판결문을 작성한 존 로버츠의 연방대법원에선 번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케이스는 캘리포니아가 리드하는 민주당 주정부들의 항소로 보수성향 강한 제5 연방순회항소법원으로 갈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특히 위헌 판결이 유지될 경우 대법원 상고는 확실하다. 항소심 판결이 새해 6월 전에 나오면 ‘다행’이어서 대법원 심의는 다음 회기인 2019년 10월 초에나 시작될 것이니 판결은 아무리 빨라도 그 다음해 봄 이전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2020년 봄, 한껏 달아오를 대선 캠페인에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겠다.

오바마케어는 당쟁에 부대끼는 동안 원래보다 대폭 약화되었다. 그래도 서민들에겐 중요한 기본 안전망이어서 여론의 지지율은 점점 높아진다. 2013년 36%에서 2018년 53%로 늘어났다.

지금까지 오바마케어 관련 판결 대부분이 그랬듯이 이번 소송의 최종결과도 예측 불허다.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안심할 수 없다는 경계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번에도 오바마케어가 무사히 살아남기를, 그래서 보험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혜택이 사라질까 걱정하는 서민들을 안심시켜주기를, 기대하자.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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