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이 여행도 추억이 되길
2018-12-18 (화) 12:00:00
최은영(섬유조형 작가)
타호에 산장을 빌렸다면서 갑자기 주말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국경일이 끼어 있는 연휴에는 가격도 비싸지고 구하기도 힘든 타호의 산장을 예약했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금요일에 출발하려니 아무래도 좀 늦어져서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을 했다. 서둘러 저녁을 챙겨먹고 11시가 넘어 잘 준비를 하게 되었다.
2층 침실에 올라가 베개를 옮기려는 순간 베개에 소복하게 쌓인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옆으로 치워 놓고 다른 베개를 들어올렸지만 마찬가지, 이불을 들춰보니 세탁을 하지 않은 듯 여기저기 머리카락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 순간부터 그 집의 어느 곳도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넘었는데, 집주인에게 메세지를 보내놓긴 했지만 아침까지 연락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예약을 한 숙박공유업체에 전화를 해서 사정 설명을 하고 어떤 차선책이 있는지 이야기하는데만 몇 십분이 흐르고, 아이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한껏 들떴던 여행 기분은 이미 다 사라지고, 다시 짐을 차에 싣고 3시간 반을 쉬지 않고 달려 새벽 5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가 실로 어처구니 없었던 여행의 전말이다.
여행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짐을 꾸렸는데 기껏 풀자마자 다시 싸들고 온 것에 신경질이 났고, 밤새 운전을 한 남편에게 미안했고 차에서 불편한 잠을 잔 아이도 안쓰러웠다. 만약 오후에, 아니 이른 저녁때 쯤이라도 도착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가 집을 먼저 둘러보고 어떤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미리 점검을 했었더라면? 체크인 시간에 맞춰 도착을 했었더라면 다시 청소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산장으로 옮길 시간이 있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짐을 풀어 정리를 하다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다들 좋다고 하는 그 업체를 믿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읽어보고 심사숙고해 숙소 예약을 한 것뿐인데, 늦은 체크인이, 집을 미리 둘러보지 않은 것이 잘못일 리는 없다. 다행히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리포트를 하면 사과와 보상을 해주는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망쳐버린 여행과 피로함에 점령당해 엉망이 되어버린 주말, 나의 이 속상함은 어찌 할 것인가. 그냥 운이 좀 나빴을 뿐이라고,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라고 넘겨버려야 하는 것인지 며칠이 지난 아직까지도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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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섬유조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