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ke sands of the hourglass, so are the days of our lives.
모래시계 속 모래들처럼, 우리 인생의 나날들 또한 그렇다네.
동네 수영장, 12월 초겨울 차가운 공기를 피해 종종걸음으로 급히 '드라이 사우나'에 듭니다. 마침 열 살 미만의 앳된 어린이 둘이 마주 앉아 있네요. 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형에게 묻습니다. Time's up, yet? 시간 다 된 거 아냐? 나갈 시간 다 된 거 아니냐구? 그러면서, 출입문 벽에 걸린 자그마한 모래시계를 내내 째려봅니다.
아이들 특유의 날쌘 동작으로 두 어린이가 나간 후, 홀로 남아 괜시리 모래시계를 바라봅니다. 가만있자, '모래시계'가 영어로 뭐드라? 뻔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네요. 사우나를 나와 미국 친구들에게 묻습니다. 저기, 드라이 사우나 룸에 걸린 '타이머' 알지? 모래가 흘러 내리는 거 말야, 그거 이름이 뭐드라? 그랬더니, 영어를 꽤 잘하는 토종 미국 노인 왈, 'Sand Timer' 아냐? 그러자, 옆에서 또 한분 미국 중년신사 왈, 'Time Turner' 아니던가? 내심, 둘 다 아니란 건 알겠는데, 과연 정답을 아는 사람은 어디에?
영어를 모국어로 꽤 잘하는 사람들에게 실망(?), 잠시 거실 소파에 앉아 넋놓고 미식축구 경기에 빠진 젊은이에게 또 묻습니다. 생뚱맞게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의 미남 청년, TV 화면에서 눈도 안 떼고 불쑥 말합니다. "Hourglass!" 그렇지!
한때 대한민국 TV 드라마 "모래시계"가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적도 기억나고, 바로 그 드라마의 감독은 이미 저세상 분인 것도 기억하며, 괜시리 인생의 덧없음을 되짚어봅니다. 그러면서, 영어 단어로 새기는 'hourglass'라는 표현이 꽤나 멋지다는 생각도 스치네요. '시간'이란 말이 '유리'라는 말과 합쳐지니 왠지 낭만적이란 느낌도 들더라?
그렇게, 중세 회고적 낭만이 넘치는 'hourglass' 느낌을 보듬으며 차를 몰아 귀가하는 중, 홀연 바로크 화풍 프랑스 미술가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사람 해골과 모래시계를 정물로 그렸든가? 그런 느낌으로 뭔가 그럴싸한 'wisdom saying'이라도 한 두개 건져 볼 요량으로 'hourglass quotes'를 검색합니다.
Like sands of the hourglass, so are the days of our lives.
모래시계 속 모래들처럼, 우리 인생의 나날들 또한 그렇다네.
현자 소크라테스[Socrates]의 말씀을 하나 건집니다. "Our lives are but specks of dust falling through the fingers of time. Like sands of the hourglass, so are the days of our lives." 우리네 인생이란 건 그저 시간의 손가락들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먼지 알갱이들에 지나지 않는다네. 흡사 모래시계 속의 모래들처럼, 우리네 삶의 나날이란 것 또한 그렇다네. 잘룩한 허리 위 아래로 나뉜 호로병 속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모래 알갱이들. 내내 지켜보면 별로 눈에 띌만한 변화가 없지만, 결국 ... 마침내 ... , 호로병 윗쪽 모래는 모두 허리 아래로 다 떨어지고 말지니.
소크라테스의 다소 직설적인 말씀이 꽤나 낭만적인단어 'hourglass' 이미지와 교차하는 중, 동양 고전 금강경 사구게(金剛經四句偈) 한 말씀도 들립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다만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으며,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볼지니라.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응당 그렇게 알고 마땅히 그렇게 보아야 하느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동네 수영장 드라이 사우나에서 새삼스레 마주친 '모래시계'[hourglass] 한 물건. 덕분에 동/서양의 혜언(慧言)을 되새기는 좋은 계기가 되었네요. 하긴, '아우어글래스'란 표현 자체만으로도 왠지 덕담(德談) 기분이 가득/물씬 차 오르는 건, 본래 낭만에 예민한 기질(氣質) 때문이려니.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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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