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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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콜로라도에 두고 온 달

2018-12-14 (금) 12:00:00 박혜서(전 소노마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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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cm 첫눈’, 최근 서울에 역대 최대치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라면 조금 흩날리다 말거나 살짝 뿌려주기 일쑤인데 서울에 이런 함박눈은 처음이다. ‘함박눈’ 하면 콜로라도가 먼저 떠오른다. ‘닥터 지바고’의 설원이나 ‘러브 스토리’의 눈싸움 생각이 날 만큼 콜로라도는 함박눈 왕국이다.

몇 년 전 덴버 큰 누님의 안식년 여행을 도와 드리려는 남편을 따라 콜로라도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간 곳은 덴버 남쪽 캐슬락(Castle Rock)이란 곳이다. 우리는 캐슬락 공원 근처로 이사한 후 집들이를 했다. 교회 식구와 옆집 미국인 부부를 초대해 한국식 소갈비 구이 파티를 했다. 소시지를 가져온 프란시스 부인이 기도를 해주었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는 기도였다. 때마침 둥근 보름달이 떠올라 ‘콜로라도의 달’이란 노래도 함께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나 홀로 걸어가네/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물결 위에 비치네/ 반짝이는 금물결 은물결 처량한 달빛이여/ 콜로라도의 달 밝은 밤은 나 홀로 걸어가네’


그렇게 며칠 지나자 함박눈이 쏟아졌고. 도시 전체가 하얗게 변했다. 놀란 것은 집마다 순식간에 눈을 치우는 모습이었다. 자동차에 제설기를 달고 마을 길도 재빨리 치웠다. 모두 함박눈 치우는데 통달한 기술자들 같았다. 우리도 눈삽으로 눈을 치우며 한국형 눈사람도 만들어 세웠다. 눈 치우기가 며칠 계속되자 남편은 몸살까지 앓았다.

12월에는 덴버에 있는 콜로라도 통합 한국학교 요청으로 뜻밖에 한국학교 교장을 맡게 되었다. 새로운 한국학교에서 새로운 선생님들과 함께 즐거운 콜로라도 통합 한국학교를 만들어나갔다. 고도가 높은 콜로라도는 고산증으로 쉽게 피곤을 느끼는 곳이라 했지만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여행 다니느라 피곤한 줄 몰랐다. 신들의 정원(Garden of the Gods), 온천, 스키장, 레드 락스(Red Rocks) 음악회, 만년설의 국립공원들을 찾아다니며 자연이 주는 상쾌함을 맛보며 지냈다.

가을에서 봄까지 눈의 왕국으로 만들어주던 콜로라도의 함박눈! 눈 덮인 캐슬락을 포근히 감싸주던 콜로라도의 달빛! 날마다 찾아와 오물오물 당근을 받아먹던 아기토끼와 사슴들! 이 그리운 모습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12월이다. 두고 온 콜로라도의 달이 그립다.

<박혜서(전 소노마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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