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악관의 비서실장 ‘구인난’

2018-12-13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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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대통령답게” 바꾸기는 4성 장군에게도 역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지난해 7월 극도로 혼돈에 빠진 백악관의 기강을 바로잡을 적임자로 발탁되어, 무절제한 ‘트럼프 제어’의 기대를 모으며 야심만만하게 출발했던 존 켈리 비서실장이 결국 사임 형식의 해고로 이번 연말 물러난다. 처음 몇 달 체제 정비에 성공하는 듯 보였던 켈리는 곧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이 드러났다.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트럼프 자신이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기강 잡기를 지원하기는커녕 직원들을 절제시킬 권한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8일 트럼프가 직접 밝혀 그나마 ‘트윗 해고’는 면한 켈리의 초라한 퇴장으로 일단 마무리되려던 비서실장 교체 뉴스는 그러나, 하루 뒤 후임 내정자가 거절하면서(그것도 트위터로!) 워싱턴 정가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몇 달 전부터 사실상 차기 비서실장으로 내정되어 트럼프가 켈리보다 더 가깝게 곁에 두고 현안들을 논의했다는 36세 선거전략가 닉 에이어스가 마지막 순간에 대통령의 제의를 물리친 것이다. 어린 자녀들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가 표면상 이유였지만 뒷말은 무성했다.

켈리와는 앙숙이었던 이방카 부부가 적극 지지한 그를 멜라니아가 반대했다는 내부암투 설도 나왔고 젊은 나이에 천만장자가 된 그가 자신의 정치자문 비즈니스에 대한 조사를 우려했다는 루머도 떠돌았다. 상당수 옵서버들은 트럼프가 자신의 젊은 시절 외모를 닮아 총애했다는 이 영리한 젊은 야심가의 ‘손익계산 결과’로 보고 있다. 이력서에 화려한 한 줄을 넣기 위해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 것이다. 월스트릿저널도 그가 언어학대를 참고 버티던 전임자들을 보며 “앞으로 감당해야할 모욕과 비난을 예상하면서” 거절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악관 비서실장은 원래도 힘든 자리다. 비서실장에 관한 책 ‘문지기들(The Gatekeepers)’의 저자 크리스 위플은 “하루 24시간 주 7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감사는커녕 생색도 나지 않는 자리, 잘못되면 모든 책임을 져야하지만 잘된 일엔 크레딧 하나 받지 못하는 자리”라면서 “그것도 좋은 시절일 때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은 좋은 시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좋은 시절’ 로널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의 성공적 비서실장으로 평가받는 제임스 베이커도 “정부 내 최악의 자리”라고 진저리쳤던 비서실장의 성공여부는 대통령이 그에게 부여하는 권한의 크기에 달려있다. 비서실장에게 자신의 어젠다를 시행하고 자신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하여 효율적 통치를 돕게 하는 권한이다.

‘워싱턴 판 미션 임파서블’로 소문난 트럼프 백악관의 비서실장 업무를 더욱 힘들게 하는 요소는 바로 트럼프 자신이다.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 무절제와 변덕에 더해 누구에게도 파워를 위임하지 않으려고 해서다. “트럼프는 비서실장을 원치 않는다”는 분석이 나오는 근거다.

유능한 참모가 절박하게 필요한 처지이면서도 강력한 참모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 대통령이 트럼프이고, 그 대표적 희생자가 켈리다.

켈리는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멍청이(idiot)’가 지배하는 ‘미친 동네(Crazytown)’에서 “내 생애 최악의 직업”에 18개월 가까이 시달리는 동안 위엄 있는 군기반장에서 분노와 불만 가득 찬 왕따로 추락한 채 퇴진하게 되었다.


켈리 자신의 과오도 적지 않았다. 한 흑인 연방의원을 ‘관심종자’로 비하했는가 하면, 가정폭력 혐의가 드러난 롭 포터 백악관 선임비서관의 해고 촉구를 오랫동안 묵살했으며, 대통령의 무자비한 반이민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등 ‘현명한’ 비서실장이라면 피해 갔을 논란에 휘말려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였다.

트럼프 백악관의 당면문제는 ‘통제 불능 보스’만이 아니다. 현재 백악관의 정치환경은 글자그대로 폭풍전야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조사는 대통령을 향해 점점 좁혀들고 새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조사강화 위협도 날로 고조되고 있다.

2020년 재선 대비와 충동적인 대통령 달래기에 더해 자칫하면 특검수사와 의회조사의 와중에서 법적분쟁에 휘말릴 위험까지 감수해야하는 게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의 몫이 된 것이다. 위플은 “최악의 경우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엮여 18개월 간 감옥살이를 한 닉슨의 비서실장 H.R. 할드만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에이어스만 철석같이 믿었는지 플랜 B가 없었던 트럼프는 켈리 후임 물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여러 명의 후보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트럼프 마음에 들면서도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할만한 능력 갖춘 적임자가 마땅치 않아서다. 힘들긴 해도 ‘워싱턴 최고 선망의 직업’이었는데, 빛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통령은 ‘가짜뉴스’라고 공격하지만 백악관이 처한 비서실장 구인난을 빗댄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구합니다 : 백악관 비서실장 -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지도자의 수석 보좌관. 자격요건 - 보스의 계속되는 모욕과 엄청난 법정비용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 사임 후 취업전망 - 불확실.” AP의 이 가상 구인광고도 그중 하나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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