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중 무역전쟁이‘무역전쟁’이 아닌 이유

2018-12-13 (목) 이성현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겸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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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이‘무역전쟁’이 아닌 이유

이성현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겸 중국연구센터장

G20 미중 정상회의 이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지낸 어느 인사는 “미·중이 결국 타협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무역전쟁은 결국 양쪽 다 손해니까”라고 내다 봤다. 경제논리에서 보면 미·중 양쪽 다 파국을 피하는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을 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국내 유수 경제연구소의 선임 연구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우리처럼 경제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미·중이 타협을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경제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연구소 내부에서도 솔직히 혼동이 있다. 경제논리로만 훈련을 받은 우리들의 한계인지도 모른다”고 소회를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경제논리’로 통쾌하게 해석이 되지 않고 있다면 다른 요소가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른 요인들 (non-economic factors)’의 영향력이 제법 상당한 수준이어서 경제 문제여야 할 무역 분쟁의 본질을 흔들리게 할 정도다. 조금 더 사고를 개연성 차원에서 넓혀 보자면, 어쩌면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무역’이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무역전쟁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미·중 구조적 갈등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섣부른 결론은 지양할지라도, ‘싸워봤자 둘 다 손해’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왜 중국에게 무역전쟁을 걸고 있는가’란 질문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부터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무역전쟁을 시작한 쪽은 미국이니 원인 제공자는 중국이 될 것이다. 과연 중국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제법 많은 논의가 이미 전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소위 중국 정부가 내놓은 ‘중국제조 2025(中國製造 2025, Made in China 2025)’라는 구호다. 처음에는 단순히 중국이 기술혁신을 하자는 하나의 슬로건인줄 알았다. 독일도 근년에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란 제조업 부흥 정책을 내건 바 있다. 한국도 경제도약 과정에서 ‘증산-수출-건설’ 혹은 ‘세계화’ 등의 슬로건을 사용해서 산업화를 장려했다. ‘중국제조 2025’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막을 살펴보니 이것이 그리 간단한 구호가 아니라 실로 야심찬 국가 프로젝트란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025년이 되는 10년 내 중국을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탈바꿈시키고, 다시 10년 후인 2035년에는 제조업 선두주자인 독일, 일본을 초월하겠다는 구체적 시한과 달성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2049년에는 세계 1위의 첨단 제조국이 되는 것이다. 비록 미국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의 목표는 미국을 초월하는 것이다.

2049년은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소위 ‘신 중국(新中國)’을 건설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진핑이 19차 당대회에서 2050년까지 ‘사회주의 선진국’을 건설하겠다고 한 것은 이러한 시기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1등 국가가 되는 것이고, 시진핑 정부의 야심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이룩한다는 시대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는 그 주력 분야가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데 빅데이터, IT, 항공산업, 신소재, 인공지능, 생명과학 등 사실은 현재 미국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관련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분야에서 중국이 경쟁하고 심지어 따라 잡겠다는 아주 야심찬 계획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것이면 중국도 갖겠다’는 경쟁 심리는 마오쩌둥이 핵무기를 개발한 원초적 동기 중 하나였고, 2012년 중국이 구 소련의 중고 항공모함을 사들여 전면 개보수한 다음 재취역 및 실전배치시킴으로써 본격적인 항모 보유국 시대를 연 것도 미국과의 미래 패권 경쟁을 준비하는 작업의 서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신경망’이라는 5G(5세대) 통신산업 경쟁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2인자인 멍완저우 부회장(CFO)이 최근 대 이란제재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된 사건도 이런 큰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멈추려면 중국이 미국 측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쉽지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의 요구 가운데는 중국 국영기업 개혁이 포함되어 있는데 중국에서 국영기업은 중국공산당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혈관’과도 같은 존재이다. “국유기업을 구조조정 하라는 것은 공산당 보고 팔에 칼 긋고 자살하라는 얘기”라는 한 중국학자의 진단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미·중 무역마찰은 경제적 측면의 문제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양국 간 마찰이 경제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설사 미·중 간 무역전쟁에 대한 잠정적인 타협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미국의 대 중국압박은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겸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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