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명까지 갉아먹는 공포의 초미세먼지

2018-12-11 (화)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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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금속 뒤섞여 심장·뇌질환 유발… “농도 기준치 이하로 낮추면 기대수명 1.4년 늘어”

수명까지 갉아먹는 공포의 초미세먼지
수명까지 갉아먹는 공포의 초미세먼지

전국 대부분의 지방에서 초미세먼지의 평균 농도가 이틀 연속 나쁨(36∼75㎍/㎥) 상태를 보였다. 한 때 매우 나쁨(76㎍/㎥ 이상)을 기록한 곳도 적지 않았다. 대기 정체로 국내에서 생성된 초미세먼지가 축적된 상태에서 중국발 초미세먼지까지 더해진 탓이다.

초미세먼지 입자는 지름 2.5㎛(0.0025㎜) 미만으로 미세먼지의 4분의1, 머리카락 굵기의 3~5%에 불과하다. 자동차·난방·발전 등을 위해 석유·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배출된 질소·황산화물 같은 대기오염물질이 공기 중에서 반응해 형성된 황산염·질산염과 탄소류·검댕 등이 75%를 차지한다. 카드뮴·납·비소 같은 우해 중금속이 뒤섞여 있어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천식환자 사망위험이 13%, 폐암 발생위험이 22% 증가한다는 해외 연구도 있다.

초미세먼지는 너무 작아서 피부 모공·기관지 등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포·혈관·태반까지 침투해 염증반응 등을 일으킴으로써 피부·호흡기질환은 물론 태아·심장·뇌질환과 수명 단축을 초래하는 것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 에너지정책연구소(EPIC)는 한국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안전기준인 10㎍/㎥ 이하로 떨어지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1.4년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인도(4.3년), 중국(2.9년)이나 전 세계 평균(1.8년)에 비해서는 기대수명 증가 효과가 작지만 북한(1.1년)보다는 크다. 대기오염 때문에 기대수명이 그만큼 단축된 셈이다. 대기오염은 흡연(1.6년), 알코올·약물중독(11개월)보다 수명 단축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영국 런던의 퀸메리대 의대 연구팀은 담배를 피운 적이 없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임산부의 태반에서 폐에서 발견되는 거무튀튀한 미세탄소 입자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초미세먼지의 일종으로 임산부의 혈액을 타고 태반까지 이동해 태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독성 나노입자가 조산·저체중아 출산 위험을 높이며 인간의 뇌에서도 발견돼 지능감소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은희 이화여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임신 기간 노출되는 초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은 태반을 경유하며 염증반응, 혈류장애, 저산소증 등 산화 스트레스와 조기 진통 등을 유발하거나 영유아 때 아토피피부염, 인지발달 지연 위험을 높인다”며 “집 주변에 녹지공간이 풍부하면 이런 위험이 상쇄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녹지공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초미세먼지는 피부의 모공보다 훨씬 작은 초미세먼지가 모공 속에 들어오면 아토피피부염 같은 알레르기 염증반응이 심해질 수 있다. 반복적인 노출은 눈 표면을 손상시키고 천식·만성폐쇄성폐질환(COPD) 같은 호흡기질환, 혈관 염증→혈전·동맥경화→심근경색·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도 악화시킨다.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호흡기내과 현인규·김철홍 교수팀에 따르면 COPD 환자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경우 호흡곤란 횟수가 호흡기질환이 없는 사람에 비해 최대 28배나 많아졌다.

방오영 삼성서울병원·배희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팀에 따르면 대기 중에 미세먼지·이산화황 농도가 높아지면 심방세동과 같은 심장질환으로 생긴 혈전이 뇌혈관을 막아 발생하는 ‘심장 탓 뇌졸중’ 위험도 커진다.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5%씩, 이산화황의 농도가 10ppb 상승하면 57%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방 교수는 “대기오염물질이 심박 수, 부정맥 등 심혈관계 전반에 걸쳐 유해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따라서 호흡기·심혈관질환을 가진 노약자, 면역저하자, 어린이, 임산부 등은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외출을 피하는 게 좋다. 꼭 외출해야 한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미세입자 차단 필터 성능을 인증(KF 마크)한 보건용 마스크를 하는 게 좋다. 반론도 있다. 장재연 아주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심장·폐질환자와 임산부는 보건용 마스크 착용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며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미세먼지 대응 요령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일반인이라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일본은 70㎍/㎥, 미국은 55㎍/㎥ 이상인 경우 야외활동에 제약을 두는 만큼 너무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외출 후 얼굴·손을 깨끗이 씻고 양치질이나 구강·코도 세척으로 피부·입안의 미세먼지를 없애준다. 한선영 왕십리 함소아한의원 원장은 “귤 등 신선한 과일·채소를 자주 먹으면 수분은 물론 비타민·미네랄 보충으로 피부는 물론 면역력 증진에도 좋다”며 “오미자차·맥문동차 등을 엷게 우려 마시면 몸속 수분(체액에 해당하는 진액)을 보충해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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