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12월이다. 함박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푸근한 달이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12월을 반짝여주고 있다. 뜨거웠던 여름의 월드컵과 ‘캠프 파이어’의 슬픔까지도 잠재워주듯 하늘도 어느새 차분한 빛깔로 바뀌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12월을 몹시 기다렸다. 워낙 눈을 좋아했지만 내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더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몇 해 전부터는 12월달에 제자들 이야기도 기다리게 됐다. 연합뉴스에서 내 이름을 발견한 제자들이 ‘즐거운 한국어 교육’이라는 나에 관한 신문 기사에 댓글을 달고부터이다. “저는 창경초등학교 제자예요. 결혼해서 아기도 낳고 잘살고 있어요. 선생님, 좋은 일을 하고 계시네요.”, “저는 장충초교 1학년 제자예요. ‘꼭두각시’ 춤을 추던 생각이 나요.”, “저는 보광초등학교 제자입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존댓말을 써주셨습니다. 꼭 ~님이라는 호칭도 붙여주셨습니다.”
12월에는 멋진 카드에 쫑알쫑알 풀어놓는 제자들의 이야기가 집으로 배달된다.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30~40년 전의 이야기들이다. “저는 반성할 일이 있어 교실에 남았는데 ‘영수 님, 목이 마르지요?’ 하시며 오렌지 주스를 주셔서 마셨어요.”, “’우용 님은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라는 말씀에 성악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어요.”, “선생님, 제 딸의 이름을 선생님처럼 ‘혜서’라고 지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저를 ‘알프스 소녀’ 같다고 하셨어요.”
제자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내 기억에 전혀 남아있지 않은 소소한 것들이다. 어느덧 중년이 된 제자들의 이야기는 공부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뜻밖에 내가 무심코 건넨 한마디, 스치듯 지나간 한마디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오래전 대학 과제물로 제출했던 내 인생관, 교육관은 ‘존경’과 ‘지식 이상의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린이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어린이들과 함께 지낸 43년동안 ‘존경’과 ‘친절한 선생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런 마음보다는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뜻밖에 기억에 남는 말’은 바로 가정과 학교에서 무심코 건네는 사소한 한마디 말, 소소한 일상의 한마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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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서(전 소노마한국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