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핵화 먹구름 속 실버라이닝

2018-11-28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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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중순 “신고 되지 않은 북한의 미사일 기지 20개 중 13곳을 확인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한바탕 소란은 두 가지를 보여준다. 그 하나는 마치 체리를 골라 따듯 수많은 현상과 주장들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것들만 골라 바구니에 담는 ‘체리 피킹’(cherry-picking)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북한 비핵화와 북미대화가 트럼프의,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어젠다로 미 조야에 각인돼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는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를 인용, 이처럼 보도하면서 “북한이 거대한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은 본연의 역할이자 지극히 당연한 의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보고서의 정확성과 객관성이다. CSIS의 보고서의 내용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한미 정보당국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고 밝혔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확인했다. 더구나 CSIS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위성사진은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 훨씬 전인 지난 3월 찍은 것이었다. 북한전문매체인 38노스는 “뉴욕타임스 보도는 사실을 오도한 극단적 과장”이라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평소 신중한 보도로 평판을 얻어온 뉴욕타임스가 이런 맥락 없는 보고서를 그냥 받아 쓴 것은 쉬 이해되지 않는다. ‘트럼프 공격’이라는 의도와 목적에 냉정함이 흔들린 것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진보성향 언론들은 트럼프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다.

이들은 북핵 관련 이슈를 전적으로 트럼프가 만들어가는 ‘트럼프 브랜드’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반 트럼프 성향 언론들은 북미대화에 줄곧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북한에 대한 기본적 의구심에 더해 트럼프가 거둘지도 모를 외교적 성과에 대한 견제심리도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임기 후반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 전망은 어떨까.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하원을 확고히 장악함에 따라 북미대화에는 상당한 견제와 제동이 예상된다. 전망은 다양하다. 차기대선을 염두에 둔 민주당의 끈질긴 공세가 펼쳐질 것이란 예상에서부터 북한의 비핵화는 초당적인 이슈인 만큼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낙관론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가 가장 합리적인 대답이 될 것 같다. 과거 북한문제와 관련한 전문가 집단의 전망과 예측은 대부분 현실을 비껴갔다. 당장 북미대화만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예견한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정은 체제로 바뀐 후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라 내다본, 소위 ‘북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특히 보수성향 전문가들이 그랬다.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CSIS 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빅터 차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북미대화 전망에 대해 너무 전문가들 의견에 의존하거나 휘둘릴 이유는 없다. 독자들 스스로 상식과 관찰에 의거해 판단하면 된다.

향후 북미대화 시나리오에 숟가락 하나를 얹자면, 민주당이 하원을 확고하게 장악함에 따라 오히려 북미대화와 비핵화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북한으로서는 그나마 자신들에게 호의적이고 그동안 대화를 계속해 온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에 ‘되돌릴 수 없는’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질 수 있다. 원래 한정판 판매나 한시적 세일에는 괜히 조급해지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북한과 미국이 계속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대화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으로서는 이미 되돌아가기 힘든 여정에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언론과 연방의회 지형변화로 북미대화 전망이 어두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환경이 오히려 비핵화를 앞당길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은 먹구름 속의 실버라이닝이라 할 수 있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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