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을 지경이라는 서울상인들

2018-11-14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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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머무는 동안 나는 가는 곳마다 “장사가 잘 되느냐“ “요즘 경기가 어떻냐” “손님이 많이 오느냐”를 상인들에게 물어 보았다. 이들의 대답은 “장사가 잘 안된다”가 아니다. 한결같이 “너무 안 돼 죽을 지경이다”였다. 예년 같으면 아무리 안 돼도 “뭐 그저 그래요” “요즘은 좀 슬로우해요” “잘 안돼요” 정도였는데 올해는 한결같이 “죽을 지경이다”라는 극한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언어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얼굴표정이 정말 심각했다.

한국경제의 내리막은 어느 정도 심각한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예는 자동차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외제차가 상상 외로 많은 것에 놀라게 된다.

BMW의 화재사건 뉴스를 보면서 해외교포들이 느낀 것은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저렇게 BMW를 많이 타고 다녔지?”였다. 놀라울 정도로 거리에 BMW가 많다. BMW뿐만이 아니다. 머세데스, 렉서스, 토요다, 혼다 등 외제차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많이 다닌다. 팔리는 자동차 6대 중 1대가 외제차인 것으로 통계가 나타나 있다.


엔진 화재사건으로 BMW가 전혀 안 팔릴 것 같지만 정반대다. 없어서 못 판다. 왜? BMW가 화재사건 이후 20% 디스카운트 세일을 하고 있는데 고객이 너무 밀려와 한달 정도 기다려야 할 정도다. 현대 차 값에 조금 더 얹으면 외제차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국산 차의 내수 판매량은 지난해에 비해 3.1% 줄었고, 수출도 7.5% 감소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가동을 멈춘 협력업체 줄도산이 늘어나고 있다. 부품사들을 중심으로 자동차산업의 위기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자동차관계 생산업체가 4,600여개 이르고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이 35만 4,000명이나 된다. 완성차 업체의 판매부진은 부품업체에 태풍으로 몰아치고 있다. 현대, 기아차의 이익률이 10%대에서 3%까지 떨어진 와중에 협력업체의 이익률은 2016년 3%대에서 올해 1%때까지 감소했다.

TV뉴스를 보니 자동차 부품사들을 비롯해 제조업 하청업체들이 모여 있는 인천 남동공단에는 공장이 문을 닫고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거리에 즐비하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어느 식당주인은 “가게가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아예 안와요”라며 식당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비자물가가 13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르고(한국은행 발표) 생산과 소비가 동반추락하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쟁 중심의 정책 기조가 계속돼야 한다는 이념적인 주장만 되풀이해 마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학자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현장에 나가보면 금방 파악할 수 있는 경제위기를 “위기론은 근거 없다”며 정부 체면유지에만 급급한 것이다.

정부가 느끼는 위기위식과 국민이 느끼는 위기의식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람 얼굴만 바꾸어서 해결될 위기가 아니다.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인재를 두루 살펴 골라야 하는데 충성심 가득한 측근 진보인사만 챙기니 이게 문제다. 반도체 수출 호조를 제외하면 생산·투자·고용·소비·수출 등 경제 전반이 내리막이다. 노동개혁은 정반대로 가고 있고, 규제개혁은 말뿐이다. 대통령은 함께 잘사는 세상을 외치고 있는데 국민들은 대통령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불안한 것이 진짜위기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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