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에 날아든 차 향기

2018-11-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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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속, 스팀에 쌓여 물을 함빡 먹은 하얀 꽃봉오리가 투명한 유리 차(茶)주전자 안에서 꽃의 향연을 벌이기 시작한다. 꽃망울을 겹겹이 싸고 있던 하얀 꽃잎은 날개 짓 하는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부챗살 모양으로 벌어진다. 그럴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 주전자 속을 현란함으로 가득 채운다.

장미향과 자스민 향이 어우러져 피어올라, 차를 마신다는 생각 전에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꽃차인 누미차의 공연이다. 달포 전 자그마한 소포상자가 배달되었다. 그리 무겁지 않은 작은 상자 안에는 유리로 된 주전자와 예쁜 꽃봉오리 모양의 차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시애틀에 사는 막내아들 내외의 안부 쪽지와 함께 날아든 누미차였다 .

“엄마! 인터넷 통해서 알아낸 차에요. 향도 좋고 너무 예쁘게 생긴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어 보내드립니다. 문단에 등단하셨다는 소식 듣고 저희 내외 무척 좋아했어요. 젊으셨을 때는 층층시하에 우리 키우시느라 전혀 짬이 없으셨으니 지금이라도 작품 활동 만끽하세요. 컴퓨터 치시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많이 즐기세요. 차의 향을 담아 막내 내외 드림.”

막내라서인지 아들은 늘 정이 많고 아이 아빠라는 제 위치를 잊은 듯 어리광스런 말투다. 머리 맞대고 도란거리며 썼을 쪽지 편지를 읽으며 두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미차 이 한 잔이 내 앞에 있어 아직은 무명 글쟁이인 나의 가슴까지 온기는 촉촉이 젖어든다. 차 한 잔에도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행복에 젖을 수 있다니, 진정한 사랑의 표현은 큰 것이 아니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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