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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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행복한 오글거림

2018-11-13 (화) 12:00:00 최은영(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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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들은 참 이런 얘길 좋아해.’ 괜히 입을 삐쭉거리면서 SNS에 포스팅된 미담을 읽어 내려갔다.

-한 여자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하려는데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 뒤에 줄을 서 있던 여자가 “나머지는 내가 지불하도록 할게요”라고 한다. 앞의 여자는 너무 미안했지만, 뒤에 있던 여자는 “이렇게 나는 당신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주고, 당신은 다음에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세요”라고 한다. – 참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었다.

아이가 프리스쿨에 다니고 있을 때, 번갈아가며 간식을 보내야 했었다. 그날의 간식은 시리얼과 우유, 바나나였는데, 깜빡 잊고 빈 손으로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아차, 나 오늘 간식 담당이었지!’, 알아차린 순간부터 정신이 없었다. 아이 선생님은 하필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간식도 똑 떨어져서, 지금이라도 마트에 들러 사다 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물론이죠, 정말 미안해요”를 외치며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마트로 달려갔다. 재빠르게 살 것들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가격은 12달러, 얼마 안되는 금액이었다. 평상시처럼 휴대폰을 카트 단말기에 대고 결제가 되기를 기다렸는데, 되지 않았다. ‘아, 맞다, 얼마전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그 안에 있던 신용카드 정보도 없어져 버렸구나!’ 그와 동시에 나는 지갑도 집에 두고 왔다는 황당한 사실 또한 깨달았다.


계산원에게 “잠깐만, 나 차에 카드를 두고 왔나봐” 하는 중에 뒤에서 계산을 기다리던 젊은 여자가 자기가 지불을 해주겠다고 했다. 일단 너무 급했기에, 염치 불구하고 ‘그럼 너무 미안하지만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내가 나중에 갚아주겠다’며 전화번호를 물었다. 하지만 그 여성분은 한사코 거절하며 이 일로 본인은 이미 행복해졌고, 나도 마찬가지로 행복하길 바란다고 할 뿐이었다. 세상의 모든 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미국으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수강 중이었던 ESL 수업 교수님께서 하셨던 질문이 생각이 났다. “왜 미국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을까요?” 그때 나는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너는 안전해. 아닐까요?”라고 답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그들과 똑같이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경험했던 그 행복한 오글거림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최은영(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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