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녀의 진로고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2018-10-18 (목) 이용석 스탠포드대 한국학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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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진로고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용석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한국학 부소장

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했다. 현악단에 이어 관악단의 연주도 있었는데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그런데 연주하는 아이들의 인종 구성이 매우 흥미로웠다. 아이의 학교는 아시아계가 반 정도 되는데, 현악단은 거의 전부가 아시아계이다. 오케스트라 연습에서 아이를 픽업할 때면 마치 싱가포르에 온 것 같다고 농담 삼아 얘기한 적도 있다.

관악단에서도 클라리넷, 플룻, 오보에 등은 아시아계가 대부분 맡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색소폰 연주자는 모두 백인이었다. 우리 아이도 어려서 무슨 악기를 배울지 정할 때 색소폰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이가 여러 악기를 접해볼 기회가 없었으니 부모가 제안한 옵션 중에서 고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 출장 중 어느 교수로부터 들은 얘기이다. 학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던 한 인문계 학생이 진로 고민을 위해 찾아왔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 학생이 부모에게 물어 보면 인문계에서 전망 있는 직종으로는 변호사나 회계사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학생은 변호사나 회계사는 되고 싶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현재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는 패션 디자인이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 교수는 그럼 디자인 관련 수업을 한번 들어보라고 학생에게 권유했는데 1년 후 학생은 자신의 관심사였던 디자인 수업에서 하위권 성적을 받고 다시 진로고민에 빠졌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물어 보아도 마땅한 대안은 없고 막상 어떠한 커리어들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며 여전히 혼란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적성에 잘 맞는 일을 찾아 행복하게 일하며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 세대만 봐도 부모 또는 주변의 권유가 진로 모색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 미장원을 다녀와서 장래에 미용사가 되겠다고 한 적이 있다. “미용사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네가 좋아하는 담임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는 건 어떨 것 같아?”라고 말하니 아이가 금세 마음을 바꿨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커리어들을 모르는 아이에게 미래의 꿈을 얘기해보라 하면 당연히 아이가 아는 범주 내에서 선택하게 될 것이다. 부모의 역할 중 하나는 바로 그 범주를 넓혀 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커리어가 있고 각각 어떠한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가 반문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커리어의 종류도 결국 내 지식과 경험의 테두리에 한정되어 있을 텐데,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커리어에 대해 충분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미국 노동부의 통계 자료를 찾아보니 현재 857개 분야의 직업군이 있는 것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이 중 나는 몇 개나 열거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에 어떠한 직업들이 있는지 공부해야 할 정도다. 학교마다 진로 상담사가 있지만 아이들이 부모와 직접 대화하며 진로를 고민하면 더 가까이 와 닿을 것이다.

최근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보틱스, 바이오 산업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가까워오고 있다. 기존의 직업 중 상당부분이 도태되거나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들이 이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당분간 가장 주목받는 직종은 기술직일 것이다. 하지만, 신기술과 빅데이터로 넘쳐나는 미래 사회에서는 오히려 판단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뛰어난 소셜 스킬을 가진 인력과 직업이 더 중요해 질 것이라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다.

미래의 직업은 현재와 매우 다를 것이다. 현재 초등학생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떠한 종류의 신종 직업들이 있을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과거를 생각하며 단순히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의 진로를 권하지는 말자. 미래에 직업과 일이 어떻게 바뀔지 지금부터 관심을 가지고 아이에게 새로운 옵션들을 제시하여 주는 것이 아이의 진로고민을 도울 수 있는 길이다.

<이용석 스탠포드대 한국학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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