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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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정말 나아졌을까요

2018-10-16 (화) 12:00:00 이수연(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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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관련된 책과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종종 사람들은 질문을 던진다. “사실 요즘 시대에 평등을 주장할 필요가 있나? 예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여성들의 삶이 나아졌잖아요. 여자 대통령이 당선됐기도 하고.” 그리고 덧붙여 질문하기도 한다. “만약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 같은 급료를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벌지 못한 돈은 남성에게서 충당하잖아요?”

말도 안 되는 질문은 무시하고 내 갈 길 가련다의 태세를 취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억지스러운 물음들이 연달아 계속되면 나도 사람인지라 화가 난다. 요즘 시대에 페미니즘을 주장할 필요가 있나,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말은 정말 말 그대로 나아지기만 한 것이다. 불공평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문제점으로 대두된 것일 뿐 실질적으로 해결이 완벽히 이루어진 사회적 구조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급여 차이는 그 차이가 작든 크든 분명히 존재한다. 여자 대통령까지 당선됐었으니 평등은 거의 이룩된 것이 아닌가? 라는 말은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모든 흑인 인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바보 같은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차별이 어떻게 대표자 한 명이 소수자를 대표하니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 있겠냐는 말이다.

마지막 질문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진 여성 혐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여성 혐오라는 단어가 세서 ‘나는 여성을 혐오한 적 절대 없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장애인에게 직접 해를 가하지 않고 피하거나 꺼리는 것만으로도 장애인 혐오로 간주하듯, 혐오란 그저 미워하고 꺼린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부족한 돈은 남성들에게 충당받는다’라는 말은 일단 “여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여자가 남성 기준의 마음에 드는 여성으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여성” 안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인종, 나이, 신체적 결함 등을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관습적으로 남성이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억울함을 느끼는 것이라면 구조를 함께 바꾸면 된다.남성들 기준에서 “예쁜” 여자가 자기에게 이득을 취하는 게 못마땅하다면 여자를 혐오하기 전에 이득을 굳이 취하지 않아도 되는 동등한 구조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관점들이 하나하나 대립하고 있다는 것은 여성의 삶이 나아졌다고 보이기보단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수연(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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