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대로 돌 던지기

2018-10-08 (월)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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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돌 던지기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예수님은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고 했지만 돌 던지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며 자신을 타이르고 타인을 받아들이려고 해보지만, 사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도 서로 비난할 때가 있는데 생판 모르는 남을 비난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래서인지 요즘엔 비난의 돌이 사정없이 날아다니는 ‘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언제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로 귀결되는 국경을 초월한 대답이 고정된 청문회 판이나, 엔터테인먼트 쇼에서 학위 관련 과대포장된 연예인과 관련 학교를 비난하는 판이나, 과대광고와 물건 후기 검열로 돌 맞고 있는 인스타그램 판매업자를 공격하는 소위 ‘까판’이나, 크고 작은 돌들이 어찌나 훅훅 날아다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요즘 일 많고 바빠서 ‘사람’을 못 만나고 짬나면 미디어만 겨우 들여다보고 살았더니 가는데 마다 맹렬한 비난 판들이 벌어져있다. 속되게 말해서 싸움구경은 돈 주고도 못한다지만, 사실 남의 싸움 구경이 재미(?)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지겹다 싶을 만큼 끈질기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내 영혼이 다 피폐해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내 생각은 이런 비난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비난의 대상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이해와 동정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나보다도 훨씬 더 치열하고 열심히 사는 배울 점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그들의 언행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볼 때 필요하다면 돌을 던져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가 돌을 던지지 말라고만 교육을 받았지, 돌을 던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바가 없다는 것이다. 돌을 던지려면 돌의 모양과 크기라든지, 돌 던지는 각도, 돌이 떨어지는 위치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동의가 이루어진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돌 대신에 칼을 들고 나서고, 또 다른 사람은 자기 힘에도 겨운 무거운 돌을 던지겠다고 낑낑거리며 나서고, 또 어떤 사람은 잘못 던진 돌에 맞았다며 또 돌을 던지기 시작하고,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저 충돌은 피하고 싸우지 말고, 남을 비난하지 말라는 교육만 받았지 어떻게 싸워야 건설적인(?) 싸움인지 배운 기억이 없다.

직업 상 항상 남의 연구에 질문하고, 따져보고, 평가하고, 반대로 내 연구나 행동 역시 비슷한 절차에 의해 평가받게 된다. 학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정형화된 돌 던지기 룰이 있는데(물론 어디에나 룰 따위 무시하는 소수가 있지만) 학교 밖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수록 혹은 가까운 사람과 싸울수록 더욱 비난과 싸움의 룰이 중요할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비난하고 싸우는 방법에 대한 합의와 동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정과 학교의 교육에서도 그 부분은 빠져있는 것 같아 좀 아쉬운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빨리 바쁜 일 마무리하고 미디어 그만 들여다보고 좋은 ‘사람’을 만나러 나가고 싶다.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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