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즐거운 편지
2018-10-05 (금) 12:00:00
김미혜(한울한국학교 교사)
아침에 일어나니 내 책상에 분홍색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다. 큰애가 남긴 쪽지다. 딸이랑 내가 쪽지를 주고받은 것은 오래됐다. 딸이 한글을 떼기 시작한 뒤로 쪽지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처음에는 삐뚫삐뚫 몇 글자로 쓰던 것이 지금은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편지 수준의 쪽지가 되었다. 말이 적을 땐 한 장, 때로는 색색의 포스트잇이 연결된 쪽지기차다. 어느 날은 바빠서 답장을 못쓰면 “엄마 내 쪽지 못 봤어?” 하는 말로 기다림을 알린다. 사실 이 쪽지의 역사는 핑크빛과는 거리가 먼 반성문으로 시작된 것이다. ‘엄마 미안해요’로 시작된 반성문 쪽지가 더해지다 보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가끔 딸에게 바라는 것을 써서 필요한 곳에 부쳐놓는다. 쪽지는 분명 같은 내용인데 듣기 싫은 잔소리를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를 찾게 되면 쪽지에 써서 그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딸애는 아직도 나에게 와서 안기고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건네지만 사춘기가 오면 말이 줄어들겠지? 그때 이 쪽지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리라 믿는다.
나도 사춘기 때 엄마랑 편지로 소통을 했다. 한참 예민하던 시기라 내 마음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 시기였다. 그런 때는 상처 주는 말보다 편지를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내가 보냈던 편지들을 모아둔 상자가 있다. 가끔 읽어볼 때면 ‘내가 이런 말을 했었나?’ 수줍기도 하고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시간여행이 되기도 한다.
나와 남편을 이어준 것도 편지였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좁혀주는데 인터넷 메일만큼 빠른 속도는 없었다. 최선의 방법이라고 선택했던 편지가 결국 마음간의 거리를 가장 가깝게 해 주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었다. 요즘같이 펜글씨 안 쓰는 때에 편지를 쓴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되는 노동이다. 행여 누구라도 볼까봐 비밀스러운 마음으로 입술을 살며시 대어 편지를 봉하는 순간의 그 벅찬 마음. 그것은 휴대전화에 전하는 간단한 메시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우체국에 가서 우편을 부치는 일련의 과정도 기다림이라는 또 다른 설렘을 준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아직도 편지쓰기를 고집한다. 세월이 흘러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을 편지를 오늘도 나는 쓰고 있다.
<김미혜(한울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