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가을사랑

2018-09-26 (수) 12:00:00 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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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9월의 끝자락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유수같이 빠른 세월은 늘 비껴 가고 싶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이 찾아온다니 곧 용서하고 싶어진다. 빨간 고추를 말리는 따가운 햇볕과 제법 싸아한 공기가 살갗을 스치면, 내 마음은 가을을 타는 사춘기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도 왠지 더 인생을 논해야 할 것 같고, 조금은 더 외롭게 느껴지며, 남편의 구석구석을 살펴 사랑 타령을 하며, 좀 더 감성을 모아 커피향에 의미를 더해보기도 한다.

이제 좀 더 기다려 단풍이 찾아올 때면 나는 절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특별한 외출을 위해 남편을 조르기 시작한다. 어렵게 대답을 받아내고는 진한 커피를 담아 오랜 세월의 고목이 늘어선 근처의 동네로 우리는 단풍 여행을 떠난다. 와! 멋들어지게 물들여진 노랑, 주황, 진빨강의 화려한 잔치를 바라보며 외쳐지는 감탄사는 해마다 덜해지질 않으니, 60세 소녀에게 이런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난 정말 어떤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동네를 돌고 또 돌며 우리 부부는 자라목이 되어 넋을 빼다가 단풍 터널을 찾아내곤 이내 차를 세운다. 가장 멋진 단풍잎으로 머리핀을 꽂아보기도 하고 맘껏 예뻐하며 색색의 퀼트를 엮다 보면 나는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철부지 아내의 단풍 짝사랑을 위해 동행해 주던 남편이 언젠가부터 사진을 찍느라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못났지만 아내를 열심히 모델로 세워주기도 한다. 남편이 작품 만들기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고즈넉이 도로 곁에 쌓여진 낙엽을 밟으며, 그들이 마지막으로 선물해주는 바스락 소리에 집중하며 생각에 잠긴다. 나도 단풍처럼 멋지게 삶을 마감할 수 있을까. 푸르른 젊음 동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황혼시절 아름답게 옷 입어 주위에 위로를 주며, 온몸의 소리로 그분께 감사를 표하며 인생을 마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일한 햇빛과 비를 받은 축복이었음에도 유난히 더 멋진 자태를 뽐내는 단풍잎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조금이라도 소홀히 흘릴까 조심스레 영혼의 옷깃을 여미어 본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가장 예쁘게 물든 단풍잎 몇 장을 주워와 성경책에 책갈피로 끼우며 다음 해의 가을을 기다리는 나의 가을 사랑! 아마도 멈추어지지 않을 나의 사랑이리라!

<데보라 임(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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