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포의 나날, 수년간의 방해

2018-09-24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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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s of Fear, Years of Obstruction]

글로벌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도산한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이미 침체상태였던 미국 경제는 리먼의 붕괴에 뒤이은 혼란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렸고, 그 이듬해 무려 65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한마디로 무서운 시기였다.

하지만 대공황 당시의 상황이 재연되지는 않았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정책결정자들이 대재앙을 피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등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건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완전한 재앙은 모면했지만, 막대한 인적비용과 경제적 비용을 발생시켰고, 현재의 헌정위기의 무대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었을지 모를 거대하고도 지속적인 취업둔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취업 둔화가 이처럼 장기화된 이유가 무엇일까?

복수의 대답이 가능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정치, 즉 공화당이 취한 냉소적이고 악의적인 의사방해였다.

내 생각에 아직까지 널리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리먼의 도산 이후 따라온 신용시장 교란이 경제에 큰 타격을 입한 무서운 금융 위기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속기간이 짧았다는 사실이다.

위험자산에 대한 가산금리 등 금융스트레스 척도는 몇 개월간 치솟았으나 신속히 정상수준으로 돌아갔다. 순수한 금융측면의 위기는 2009년 여름에 이르러 기본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보다 광범위한 경제위기는 훨씬 오랫동안 지속됐다. 거의 10% 수준으로 치솟은 실업률은 고통스러울 만큼 느린 속도로 내려갔다: 리먼이 붕괴한지 7년이 지난 후에도 실업률은 5%선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신속한 금융회복이 빠른 경제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인 수준의 대답은 금융위기란 그보다 훨씬 큰 문제의 한 가지 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더 큰 문제는 어마어마한 주택시장 거품이다.


거품이 터지자 경제에 강력한 하강기류가 불어 닥쳤다. 거품 붕괴가 주택투자 급락을 불러온 한편 가계자산에 엄청난 타격을 가해 소비자 지출 축소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당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지출 증대 정책이 필요했다. 주택시장 붕괴가 불러온 부정적 효과를 상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가 이미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었기에 이자율 인하라는 정상적인 대응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그 대신 필요한 것은 정부지출을 늘리고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정에 대한 감세를 통해 소비자지출 확대를 유도하는 재정부양책이었다.

재정부양책이 시행되긴 했다. 하지만 규모가 충분히 크지 않았고, 더 중요한 것은 너무 일찍 끝나버렸다는 사실이다.

실업률이 여전히 7% 위에 머물던 2013년에 이르자 정부는 주택시장 붐이 여전히 강력하던 2007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다.

침체된 경제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를 통해 훨씬 큰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할 수 있었을지 여부에 대한 토론은 결론을 얻기 힘들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부 관리들이 좀 더 강력한 정책의 필요성을 놓쳤다는 점이다.

당시 행정부 최고위 경제학자인 크리스티나 로머가 추가 경기부양을 요구했으나 팀 가이스너 재무장관은 이를 “설탕”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것 말고도 실업률을 줄이려는 노력은 높은 실업률과 기록적인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아닌 부채가 진짜 문제라는 벨트웨이 지역 주민들 사이의 기이한 공감대까지 함께 다뤄야 했다.

그러나 주택거품 붕괴로 인한 낙진을 상쇄하는데 도움을 줄 만한 모든 것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초토화 전략이 극심한 경제둔화가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된 가장 중요한 이유다.

내가 말하는 “초토화”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2011년 여름 의회 내 공화당이 부채한도 인상을 거부해 새로운 금융위기를 촉발시키겠다고 위협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라.

그들의 목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압박해 지출을 줄이는 것이었다. 당시 실업률이 여전히 9% 선을 유지하고 있었고 실질대출비용은 제로에 가까웠는데도 말이다.

지금 공화당은 당시 대량 실업을 제한하는데 필요한 조치에 무조건 반대한 것은 재정책임에 대한 약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건 완전한 위선이다. 왜곡과 은폐로 일관된 공화당 예산안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무엇이건 무턱대고 잘 믿는 사람들만이 예산 적자에 관한 공화당의 얼토당토않은 재정 매파적 태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사회에는 아무것이나 덜컥덜컥 잘 믿는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어쨌건 과거 2년간의 이벤트들은 그동안 벌어진 일의 실상을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심각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미국은 일자리 지원을 위한 지출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근엄하게 선언했던 공화당의 바로 그 정치인들이 경제가 거의 완전고용 상태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를 어마어마하게 부풀릴 부유층과 대기업들에 대한 감세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재정책임에 대한 그들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그들은 처음부터 적자 따위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따라서 2008년에 시작된 극심한 경기둔화가 왜 그리 오랫동안 지속돼 미국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에서 대답을 찾아야 한다.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분명하다. 냉소적이고 불성실한 공화당은 백악관이 민주당의 수중에 들어 있는 한 경제에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기보다 차라리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희생시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진짜 이유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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