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히딩크와 박항서

2018-09-12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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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가 중국의 올림픽 축구팀 감독(주로 21세 이하)을 맡게 된 것이 축구계의 화제다. 중국에서 히딩크 바람이 일어나고 베트남에서 박항서 매직이 계속된다면 동남아에 뜨거운 축구열풍이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 한국이 참가하는 오는 2020년의 AFC U-23 챔피언십은 흥미진진한 대회가 될 것이다. AFC U-23 챔피언십은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예선을 겸한다.

히딩크와 박항서의 리더십은 어떻게 다른가. 히딩크와 박항서는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한국 국가대표팀의 감독과 코치로 팀 멤버였다. 히딩크는 쓸모없는 선수는 가차 없이 버렸다. 기브 앤드 테이크 형이다. 그래서 히딩크 앞에서 선수들은 언제나 긴장했다.

한국축구는 고참 선배가 후배들의 플레이를 지배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히딩크는 이 위계질서를 가차 없이 깨버렸다. 홍명보를 대표팀에서 6개월이나 제외했다가 후배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뛰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다시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히딩크는 전략가형이 아니라 경영인형 감독이다.

박항서는 전혀 다르다. 선수들과 흉허물 없이 지내고 친화적이며 도구로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다. 신의 있고 의리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며 주변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수들이 박 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른다. 히딩크는 우두머리 리더십이고 박 감독은 섬기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히딩크와 박항서에게는 뛰어난 공통점이 있다. 선수들의 자기능력 계발이다.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일깨워줄 줄 아는 모티베이션 활용이다. 히딩크가 한국대표팀을 떠나면서 후계자로 박항서가 지명되었는데 그때 히딩크가 박항서에게 남긴 충고는 “절대 선수를 만들어 쓰지 말라. 그들이 갖고 있는 실력을 극대화하는 데만 신경을 써라”였다고 박 감독이 회고한 적이 있다. 선수들이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감독의 임무라는 것이 히딩크의 철학이다. 이 원칙은 박 감독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딩크는 선수들의 모티베이션 개발에 능하고 상술에 뛰어난 네델란드인답게 자기 몸값을 적시에 올릴 줄 아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히딩크의 중국팀 대표 연봉이 1,200만 달러인데 비해 박항서의 베트남팀 연봉은 20만 달러 정도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박항서가 한국에서 감독으로 있었으면 빛을 보았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박항서가 그동안 한국에서 3류 감독 대우를 받고 지냈다는 것은 한국인의 편견이 심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마음 좋은 사람은 한국에서 무능력자로 취급당하기 쉬우며 히딩크처럼 겁주는 리더십을 보여야 통솔이 가능하다.

그러나 박항서 매직은 상상도 못한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 분야에서 한국 상품의 베트남수출이 껑충 뛴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의 3번째 큰 수출대상국이다. 충청북도의 경우 농식품 베트남 수출액이 872만4,000달러로 지난해보다 50.6% 늘었다. 충북은 이런 분위기를 기회 삼아 베트남 내 최고시장 점유율을 가진 하노이 빅C마트에 33㎡크기의 판매장을 개점하기로 했으며 박 감독의 사진을 전시장에 걸어 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박 감독이 모델로 등장한 박카스는 베트남에서 선풍을 일으켜 동아제약이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아시아인 - 특히 동남아 사람들은 외국인 배척이 심하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박항서가 영웅 대우받는 새로운 풍토가 형성되고 있으며 그 이미지에 힘입어 수출까지 늘어나는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서 수출이 어떤 모양을 갖추어야 되는가를 박항서 현상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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