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스트 돈 두 잇’

2018-09-11 (화) 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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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 여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씩씩하게 달리는 팔순노인이 미국 TV광고에 떴다. ‘저스트 두 잇(Just Do It: 그렇게 하라)’이라는 자막이 붙었다. 매일 17마일을 달린다는 이 노인은 “사람들이 찬바람에 이빨이 맞부딪뜨리지 않냐며 걱정해주지만 문제없어요. 틀니는 집에 두고 뛰니까요”라고 익살을 부렸다.

그해 ‘저스트 두 잇’ 광고캠페인을 시작한 나이키회사는 곧이어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가 출연한 ‘에어 조던’ 농구화 광고로 대박을 터뜨렸다. 광고 열기를 타고 1998년까지 10년간 시장 점유율을 18%에서 43%(매출액 92억달러)로 늘린 나이키는 당시 신발업계 선두주자였던 리박(Reebok)을 제치고 공룡기업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Just Do It’의 기원은 별로 밝지 않다. 유타 주 사형수 게리 길모어가 1977년 처형 직전에 말한 ‘Let‘s do it’(이제 <사형집행을> 하자)에서 연유했다. 나이키가 원한 것은 바로 ‘Do It’ 두 글자였고, 이는 기업체가 소비자들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도록 격려하는 말”이라고 한 관계자가 설명했다.


‘저스트 두 잇’ 광고 캠페인 30주년인 올해 나이키가 ‘운동권’ 풋볼선수 콜린 캐퍼니크를 모델로 내세워 떠들썩하다. 2년전 인종차별과 경찰폭력에 항의하며 애국가 연주와 국기배례를 거부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는 지난 6일 NFL 시즌 개막경기 도중 방영된 나이키 TV광고에 해설자로 출연, 엄숙하게 ‘저스트 두 잇’을 강조했다.

동료 풋볼스타 오델 베캄(뉴욕 자이언츠)과 왼손이 없는 샤큄 그리핀(시애틀 시혹스),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 테니스 여제 세레나 윌리엄스 등 역경을 딛고 성공한 선수들의 모습도 비친 이 광고에서 캐퍼니크는 “미쳤다는 말을 들을 만큼 큰 꿈을 품어라. 무엇엔가 확신을 가져라. 그것이 모든 것을 희생시킨다 해도 그렇게 하라(Just do it)”라고 설파했다.

이 광고는 전파를 타기 훨씬 전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당연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앞장서서 나이키 경영진을 비난했다. 그는 캐퍼니크의 국기배례 거부에 점점 많은 풋볼선수들이 동참하자 작년 9월 한 정치집회 연설에서 “풋볼 구단주들은 성조기를 외면하고 무릎 꿇는 후레자식들을 모조리 해고해야 한다”고 윽박질해 백인 추종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소셜미디어에 나이키 불매운동이 떴고 일부 열혈보수파는 나이키 운동화를 불태우는 사진까지 게재했다. 하지만 캐퍼니크와 나이키를 옹호하는 측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캐퍼니크가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 시대 가장 영감 있는 선수라고 치켜세우고, 사회정의를 표방한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 광고도 다시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고 맞선다.

그러나 ‘저스트 두 잇’의 속내가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심 이를 쌍수로 환영한다. 국기배례 거부가 이슈화될수록 자신의 재선은 물론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원래 편가르기 작전을 벌여 열세를 뒤엎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는 사사건건 백인보수 중산층에만 영합한다. 반 이민정책이 그렇고, 무역전쟁이 그렇다.

나이키도 마찬가지다. ‘저스트 두 잇’ 논란이 커질수록 나이키 브랜드 운동화가 더 잘 팔린다는 속셈이다. 캐퍼니크는 이 광고로 날개를 달았다. 그는 무릎 꿇기 저항을 시작한 후 자신을 받아주는 구단이 하나도 없는 것은 구단주들의 ‘담합 모함’ 때문이라며 소송을 벼른다. 찬반 간에 논란이 많아질수록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옹호세력이 커진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스포츠가 돈의 노예가 된 건 당연한 귀결이다. 금년 수퍼보울 티켓 가격이 2만1,34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젠 스포츠가 정치에도 이용당하고 있다. ‘저스트 두 잇’에 참견했다가는 정치와 상술의 꼭두각시가 되기 십상이다. 트럼프, 나이키, 캐퍼니크에게 “저스트 돈 두 잇(Just don’t do it: 제발 그러지 말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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