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뭐가 한참 잘못 되었다

2018-08-29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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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울에서 기자를 하던 동료들이 은퇴한 후 미국을 여행하면 한번씩 만나게 된다. 이들은 은퇴하기 전 신문사의 편집국장, 주필 등을 지낸 사람들이다. 화제를 나누다보면 자연히 문재인 정권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에 초점이 모아지기 마련이다.

이들 고참 언론인의 말을 종합해보면 문재인 정권은 서민적이고 뭘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데 말이 너무 앞서 국민들이 현 정권을 믿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정책 실패 때문에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서민들에게 가장 피해가 많은 정책을 펴고 있고, 대화를 외치면서 뭐든지 고집불통으로 밀고 나가고, 적폐청산의 정도가 지나쳐 정치보복 인상이 짙어 사회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화합을 외치는데 국민들은 완전히 친문과 비문으로 갈라져 버렸다.

한국은 지금 시위 천국으로 변해가고 있다.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30여건의 데모가 열리며 주말에는 광화문, 종묘공원, 서울역 등지에서 수천, 수만명이 모여 각종 구호를 외친다. 진보단체인 ‘통일연대’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우파인 ‘대한민국 수호 비상 국민회의’는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혐의가 무죄로 판결나자 여성들이 데모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업운영이 어려워진 중소기업인들도 데모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직원들은 가면을 쓰고 경영쇄신을 시위하고 있다. 공권력은 어디로 가고 사회의 각 집단이 너도나도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들도 데모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엊그제 서울시 교육감 등 5명의 교육감은 청와대 앞에서 두달째 농성하고 있는 전교조 시위에 참석해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을 취소하라”고 기자회견까지 했다. 이것이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교육 지도자들의 시범적 행동이다.

목소리가 커야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 절차를 뛰어넘고 법을 무시해도 조직력만 있으면 파워를 발휘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법과 정부의 통계는 국민이 믿어야할 마지막 보루다. 그런데 대법원이 수사선상에 올라있고 서민생활향상 통계숫자가 마음에 안 맞는다고 통게청장을 전격 경질해 버렸다. 정부 스스로가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도록 자책골을 넣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은 운동권과 시민단체출신들로 짜여져 있다. 이들은 판을 뒤집는 인사를 혁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판을 뒤집는 인사라 해도 상식에 어긋나면 안된다. 국민들 보기에 역겨워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강원랜드를 쇄신한답시고 행한 후임인사는 정신 나간 사람들의 인사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1992년 간첩활동을 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주범 황인오 씨가 얼마 전 강원랜드 상임감사 최종 후보 2인에 포함된 것이다. 황 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김대중 정부가 특사로 풀어줬고 노무현 정부는 사면복권시켰다. 적폐청산의 대안이 이런 것인가.

좌파정권의 특징은 목적만 달성하면 과정은 잘못 되었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정치는 현실인데 이들은 현장과 현실을 너무 무시한다. 대학강의 하듯 정책의 당위성만 강조한다. 이와 같은 실책을 정부예산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환자에게 마약을 투약하여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 - 뭐가 한참 잘못되어가고 있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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