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덕 없는 지도자의 인생말년

2018-08-15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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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천 없는 장사꾼 불쌍하고 인기 없는 연예인 불쌍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불쌍한 것은 무시당하는 지도자다. 지도자의 최대의 악덕은 측근으로부터 경멸당하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똑똑하지만 덕 없는 지도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강의 듣는 기분이다. 40년 지기이며 MB(이명박)의 집사로 알려진 김백준 청와대 전 총무기획관까지 MB의 부정을 털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한때 이명박 선거대책 본부장이었던 정두언(전 국회의원)은 “이명박은 돈에 너무 집착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엊그제 재판에서 드러난 우리금융지주회장 이팔성의 메모는 대통령의 매관매직을 보여주고 있어 어이가 없다. 산은총재 혹은 국회의원 시켜달라고 19억6,230만원, 우리금융지주회장 연임 대가로 3억원, 그리고 퍼스트레이디인 김윤옥 여사에게도 3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이팔성은 이 돈을 부어넣고도 감투가 주어지지 않자 “이명박과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해야 하는지 괴롭다. 나는 그에게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 족속들은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라는 메모까지 남겨놓고 있다.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청와대 살림을 맡아보았던 제1부속실장 김희중이 “이팔성의 메모는 거의 사실이다”라고 증언을 한 것이다. 지난주 측근들의 이와 같은 증언으로 이명박 변호인단은 지금 MB의 변호를 제대로 못하고 있을 정도다. ‘이명박’이 서울시장만 하고 은퇴했으면 청계천 업적과 함께 영원히 서울시정사에 이름이 남았을텐 데 분수를 모르고 대통령자리까지 욕심 부리다가 저렇게 비참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에서는 품격이 떨어져도 인기 있고 선거만 잘 치르면 대통령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좋은 예다. 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이다. MB의 인사는 주고 받는 식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측근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잡아야 유능한 지도자다. 제갈 공명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왜 반란을 일으킨 남만의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 주었는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힘으로 다스리면 맹획이 언젠가 또다시 반란을 일으킬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신의를 지키는 덕장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맹획은 그 후 제갈 공명을 죽을 때까지 섬겼다.

지식이 많다고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너무 똑똑하면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지혜롭다는 것은 고개를 숙일 줄 안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마오쩌뚱(모택동)보다 저우엔라이(주은래)를 더 존경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저우엔라이의 겸손이 시간이 지날수록 돋보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 중에서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저우엔라이라는 것에 대해 중국인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현직을 떠나보면 누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 윤곽이 드러난다. 교수들도 그렇지만 대통령도 현직을 떠난 후 박수 받는 대통령으로 남기를 원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덕을 쌓지 못한 지도자의 마지막 그림이 얼마나 황량하고 비참한가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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