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vs 캘리포니아 : 라운드 2

2018-08-09 (목)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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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 캘리포니아의 쟁점이 ‘이민’으로 첫 라운드를 시작했다면 라운드 2는 ‘환경’이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가 겨루는 소송은 이례적으로 봇물을 이루었다. 캘리포니아가 단독으로, 혹은 다른 주들과 연계하여 트럼프 정책에 도전하는 법적조치는 소송과 가처분신청 등을 포함해 지난 7월 말 무려 38건에 달했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피난처 주’법 시행중지 소송 등 캘리포니아를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와 캘리포니아가 엇나가는 정책은 헬스케어에서 교육, 소비자 보호 등 다양하지만 가장 핫이슈는 이민과 환경이다.


무슬림 입국금지 명령부터 다카 폐지, 센서스에 시민권 질문 추가, 국경의 가족분리 조처, 피난처 주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는 ‘이민’ 법정투쟁은 승패가 교차되면서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입국금지 행정명령 소송은 처음보다 내용이 한결 완화되기는 했지만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으나, 지난주 연방항소법원은 피난처 지역정부에 대한 연방 지원금 중단 행정명령은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아직 대부분의 케이스는 계류 중이다.

‘이민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트럼프 대 캘리포니아의 2 라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 연비기준 완화 플랜을 발표하면서 불붙은 ‘환경 대전’이다.

지난주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후변화 대책인 자동차 연비기준 강화 규정의 대폭 완화 플랜을 발표했다.

자동차의 온실개스 배출은 미국 내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힌다. 2012년 오바마 행정부가 채택한 연비기준 규제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2026년까지 갤런 당 50마일의 연비 목표를 달성하도록 해마다 순차적으로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까지만 순차적 강화를 적용하고 2021년부터는 폐지해 갤런 당 37마일에 동결시키겠다는 것이 트럼프 플랜이다.

트럼프의 환경보호 공격 중 ‘가장 파괴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 전국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2020년 이후엔 새 차에 대해 연비기준 강화를 요구하지 않는 이 플랜이 시행될 경우 추가 배출될 온실개스는 22억 톤에 이르게 된다.

트럼프 플랜의 반 환경 칼날은 또 하나의 ‘오바마 뒤집기’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친 환경의 기수로 연비기준 강화 등 대기오염 대처에 앞장 서온 캘리포니아를 정면 겨냥하고 있다. 연방정부보다 강력한 자동차 배출기준을 자체 제정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기존 권한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가 자체 규제 권한을 갖게 된 배경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데이빗 보겔 UC버클리 교수는 LA타임스 기고를 통해 설명했다. 당시 LA의 심각한 스모그 오염에 대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동차 배기개스 통제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면서도 캘리포니아에 한정된 문제라고 주장하던 자동차 업계는 그 후 뉴욕 주등이 통제법을 추진하자 연방규제를 지지했지만 조건을 달았다 : “어떤 주도 연방보다 더 엄격한 통제를 허용해선 안 된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분노했다. 30만 명 이상이 주의 규제 독립권을 지지하라는 내용의 서신을 의회로 보냈다. 항의는 성공적이었고 1967년 대기청정법에 의해 캘리포니아는 자동차 배출 기준을 제정할 권한을 인정받았다. 이 권한은 그 후 여러 차례 연방법에 의해 재확인 받았으며 그 50년 동안 인구 4,000만 명의 미 최대 자동차 시장인 캘리포니아는 ‘클린 카’를 위한 혁신적 규제의 실험실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트럼프 플랜 발표 후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성명을 통해 “그의 무모한 책략으로 운전자들은 개스비를 더 내야하고, 마일리지는 나빠질 것이며, 공기는 오염될 것이다…캘리포니아는 상상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 어리석음과 투쟁할 것이다”라고 천명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엊그제 주 대기자원국도 트럼프 행정부가 완화기준을 채택하더라도 자동차 제조사들은 현 캘리포니아의 규제기준을 준수해야할 것이라고 통보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법정투쟁에 앞서 법적 근거를 강화하려는 채비이기도 하다.

트럼프에게 오바마시대 규제 완화를 요청한 것은 자동차 업계이지만 막상 법정투쟁 장기화와 함께 자칫 자동차 시장이 친환경의 블루 스테이트와 트럼프 플랜에 순응할 레드 스테이트의 2개로 양분되어 각기 다른 모델을 팔아야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업계는 난감한 표정이다. 앞으로 60일 여론 수렴 기간 중 ‘법정투쟁’ 아닌 ‘타협’을 택하라고 양쪽에 거듭 호소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10여개 주들이 합세한 ‘환경 전쟁’의 심각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후변화를 무시하는 대통령의 ‘무지한’ 트윗은 또 다른 설전을 야기 시켰다. 계속 확산 중인 캘리포니아 최악의 산불이 ‘나쁜 환경법’에 의한 ‘물 부족 때문’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펼친 것. 소방당국은 “물은 충분하다”라고, 전문가들은 “너무 어처구니없어 언급조차 하기 싫다”라고 각각 일축했으며 백악관에서도 아무런 옹호발언이 나오지 않고 있다.

환경 전쟁의 법정투쟁 전망은 엇갈린다. 캘리포니아는 연방법이 보장한 권한을 근거로 승리를 예상하고 트럼프 측은 보수 연방대법원에 의지해 최종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2 라운드 결과에 상관없이 트럼프의 공격과 캘리포니아의 반격은 계속될 것이다. 인구 27%가 외국 태생이며 숨 막히는 스모그에 시달려본 캘리포니아에게 ‘이민’과 ‘환경’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존 자체의 명제라는 것을 트럼프가 깨닫는 날이 오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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