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무 자주 너무 덥다

2018-07-26 (목)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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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주 만에 남가주에 다시 폭염 경보가 내렸다. 데스밸리는 127도(섭씨 52.7도다!)로 100여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우드랜드힐스도 108도로 치솟았다. 본격적 여름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더워도 너무 자주, 너무 오래, 너무 덥다.

요즘 남가주의 여름 더위는 전과 다르다. 30년 전 에어컨이 필요 없다던 글렌데일의 금년 7월은 한낮 팜스프링의 거리에 선 듯 매일 매일이 뜨겁다. 일기예보는 별로 위로가 되지 못한다. 장기적 기후 예측도 더 자주, 더 오랜 기간, 더 뜨겁게 기승부릴 폭염을 경고한다.

남가주만이 아니다. 미 전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 유럽의 북극권과 북 아프리카까지 4개 대륙의 기록적 폭염이 7월을 점령했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이 온실개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현상으로 경고해온 폭염이다. 이제 우리의 계절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기후가 아니다”란 환경경제학자 리어 스토크스의 한탄을 새삼 실감나게 한다.


기후변화는 조금씩 오래 진행되어온 ‘슬로 모션의 위기’이지만 더 이상 먼 곳의 가상 상황이 아니다. “그 영향은 이제 사방에서 감지된다. 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 홍수와 산불로 우리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고 기후과학자 마이클 만은 지적한다.

어제오늘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폭염은 기후변화 때문인가. 97%의 기후과학자들이 합의한 기본핵심은 포괄적이고 명료하다 : “기후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지구는 더워지고 있다, 그 대부분의 책임은 인간의 행동에 있다.”

그러나 폭염 등 극한 날씨의 책임 소재를 찾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날씨 자체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날씨는 행성의 궤도에서부터 대양의 조류, 인간행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변덕스럽기도 하다. 인간이 연료를 쓰기 훨씬 전부터 지구는 빙하기와 온난기를 경험했고 자연의 가변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연적 요인 때문이 아닌,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데서 과학자들의 합의는 끝나고 구체적 질문과 예측으로 들어가면서 이견이 시작된다 : 기온은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오를 것인가, 해수면 상승의 정도와 시기는? 기후변화가 폭염 같은 극한 날씨나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의 주요 원인인가…

116명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연구팀이 2016년 세계의 기상이변을 분석하여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산업화이전 시대라면,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가 없었다면” 극한 날씨와 자연재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현상”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극단적 기상현상을 악화시켰을 것으로 분석하지만 기후변화를 극한 날씨나 자연재해의 유일한, 주요 원인으로 확정하지 않는 것이 아직은 대다수 과학자들의 입장이다.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 LA의 폭염은 기후변화의 탓인가, 아니다. 폭염이 더 잦아지고, 심해지고, 오래 가는 것은 기후변화 때문인가, 그렇다.


폭염과 산불과 홍수와 가뭄의 원인이 전적으로 지구온난화라고는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인의 하나이며 지구온난화로 인해 발생 확률과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환경보호국이 지난 5월 발표한 평가서는 기후변화가 이미 캘리포니아에 미친 영향을 5가지 측면에서 보고하고 있다. 그 첫째는 폭염이 잦아지면서 점전 더워지는 밤이다. 기후변화는 남가주의 폭염 확률을 20~50배 증가시켰고, 예전엔 극히 드물었던 한밤의 고온이 최근 확연히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둘째, 극단적 폭염으로 산불의 피해도 악화되었다. 이제 산불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다. 기온이 상승하고 봄의 해빙이 빨라지면서 매년 피해면적도 늘어간다. 1932년 이후 톱 20위 대형 산불 중 14건이 2000년 이후 발생했다.

셋째 수온도 빠르게 올라가 물의 온난화 가속화는 지난 4년간 10배로 뛰었으며, 넷째 시에라 네바다의 빙하는 20세기 초에 비해 70%가 손실되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해수면은 계속 상승 중이다. 샌프란시스코 앞바다는 1900년 이후 7인치가, 라호야 앞바다는 1924년 이후 6인치가 올라갔다.

이틀 계속 아이폰에 수도전력국(DWP)의 메시지가 들어온다. 폭염 경보와 전력사용 절제 당부다. 예전 ‘정상적 기후’의 수요에 맞춰 설치된 기간시설로는 감당하기 힘든 폭염의 전력사용 폭증을 우려하는 것이다. DWP 대변인은 “낡은 자동차를 타고 논스톱으로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 것과 같다”고 한숨 쉬고, 제너럴 매니저는 “폭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이것이 미래의 모습이다”라고 경고한다.

경고는 지난 12월 주 상원에서 기후변화 적극 대처의 필요성을 강조한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스피치에서도 나왔었다. 그는 “회개하라,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외치던 선지자처럼 예언했다. “기후변화는 실재한다.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현실이다. 79세인 나의 생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집단 이주, 질병 만연, 맹렬히 불타는 숲을 목격하는 그 끔찍한 상황이 닥쳤을 때 여러분 상당수는 살아 있을 것이다”

인간의 기준에서 본 기후변화의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지구의 시각에선 대단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과학자들도 경고한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무관심한 것은 “지구온난화는 중국의 사기”라며 파리기후협정 탈퇴까지 감행한 트럼프만이 아니다. 극한 날씨와 이에 따른 재해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엄청난 재산 손실이 발생해도 미국에서의 ‘기후변화’는 시청률 높은 핫뉴스가 아니다. 주요 선거 이슈도 못 된다.

우리의 지친 삶을 치유해주는 계절다운 계절이 사라지고, 불타는 지구가 신음을 넘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아직도 우리의 관심을 끌기엔 부족한 것인가.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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