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국과 질병

2018-07-21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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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가주에서 의료 선교대회가 있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기독교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 각 분야의 의료인과 젊은 학생들이 함께 모였다. 영혼을 치료하려는 선교사님들의 고충과 그들의 사랑의 열정을 느끼면서 참석자들은 커다란 감동을 받고 그들의 사역에 동참하기로 다짐했다.

세계 어느 한곳 귀하지 않고 어렵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몽고에서 수고하고 있는 후배 박 선교사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가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왜 일까? 후배의 뜨거운 열정 때문일까? 아니면 몽골인들의 진취적 기상과 한번 목표를 정하면 절대 좌절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피가 한민족에게도 흘러 형제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몽고에는 고혈압, 동맥경화증으로 인한 신장병, 중풍과 심장마비가 매우 많다. 재배가 힘들어 야채를 잘 섭취하지 못하고, 기름진 양고기와 말고기 그리고 동물의 젖, 그것으로 만든 차를 많이 섭취하는 데서 기인한다. 결핵도 널리 퍼져있어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60세 미만이다.


그뿐 아니라 경제난과 취업난, 사회전반의 우울함이 더해져 국민의 약 40%가 알코올중독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성인의 알코올 중독률이 6% 이상만 되어도 국가 안보문제로 분류하는 것을 볼 때 몽고인들의 건강과 국가의 장래는 암울한 실정이다.

박 선교사는 혈관 외과의사로 신장내과 의사들과 함께 신장말기 환자들의 혈액 투석치료를 해주고 있는데 저렴한 비용으로 해주다 보니 재정적 부담이 많다. 그 재정적 손실은 다른 일반 수술에서 발생되는 이익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돈이 없는 사회에서 신장 말기환자들은 투석을 못 받고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보통이라 그런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료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박 선교사는 가장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베푸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임을 기억하며 기꺼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열악한 여건과 부족한 기반시설도 어려운 점이지만 몽고 현지인들의 비효율적인 행정처리와 비협조적인 태도가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한다.

몽고 생활은 만만치가 않다. 몽고의 깨끗하고 새파란 하늘과 낮게 깔린 뭉게구름, 붉은 파스텔 저녁놀의 풍경은 잠깐이고 여름에는 섭씨 4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40-45까지 내려간다.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흙먼지로 세상이 온통 뒤덮여 코, 귀, 입에서 흙먼지를 털어 내야 하는 날이 많다. 이 흙먼지는 세계를 호령했던 칭기스칸에게는 문제가 안 되었을까?

11-12세기에 몽골고원에 있던 여러 부족들을 통일한 영걸은 ‘테무친 보르지긴’이었다. 그는 1206년 44세의 나이로 몽골의 대칸에 올라 칭기스칸이라 불렸고 대몽골국을 시작하였다. 그는 몽골의 기마군단을 이끌고 공포의 정복전쟁을 거듭하여 1227년 죽을 때까지 대몽골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후계자 칸들은 태평양 연안에서 동유럽 폴란드, 헝가리까지, 시베리아, 페르샤만에 이르는 역사상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였고, 제 5대 칸인 쿠빌라이는 1271년 원 제국을 출범시켜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중국과 동아시아 전역을 지배했다.

쿠빌라이 사후 왕실의 후계다툼과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부족, 국정 해이를 틈타 그동안 차별받았던 한족들의 반란 등으로 원나라는 약해지고 있었지만 몽골제국 멸망의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유럽에 갔던 정벌군이 회군하면서 흑사병을 달고 몽고로 돌아왔고 중국전역으로 흑사병이 퍼지면서 군사력의 급격한 쇠락과 인구 감소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다.


전광석화 같은 기동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제국도 빠르게 퍼지는 감염병을 막지는 못하였다. 시간이 흘렀지만 옛 영광을 잃은 후예들은 좌절에 빠져있고 고혈압과 알코올 중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희망을 잃은 우리의 형제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줄 것인가? 박 선교사는 젊은 학생들에게 몽고 민족을 치료할 의료인의 꿈을 제시하며 구체적인 교육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과 자신들도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음을 체험한다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수년에 걸친 사랑의 노력이 이미 열매를 맺어 그가 키워놓은 학생들과 레지던트들은 박 선교사와 힘을 모아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살려내고 있었다. 사랑의 힘은 제국을 다시 살리고 있었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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