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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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이라는 문턱

2024-05-03 (금)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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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셨나 봐요? 일 좀 줄이셔야죠.”

“네, 줄여야죠. 줄이려고요.”

“작년에도 똑같이 말씀하셨어요. 근데 더 많아졌잖아요.”


나는 말짓하다 들킨 아이처럼 움찔했다. 그는 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잠을 못 자면 머릿속에 온통 뾰루지가 솟는다는 걸. 두피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나이를 덮으러 자기를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미용이라는 한 우물을 판 사람이다. 결은 다르지만, 창작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헤어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가위를 쥔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하며 실력을 키우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손님이 원하는 머리를 해 줄 수 있는 반열에 올랐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실수의 문턱을 넘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 긴 생머리를 고집하며 살았다. 레이어 내는 걸 싫어하고, 방금 자른 것처럼 가위 자국이 나는 것도 싫어한다. 단발이 쉬워 보이지만, 이구동성 어렵다고들 한다. 자를 줄은 모르지만 볼 줄은 안다. 가위 놀리는 것만 봐도 미용사의 실력이 보인다.

그에게서 자신이 처음 단에 섰던 날에 관해 들은 적 있다. 단발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는데, 첫 손님이 긴 생머리를 단발로 자르는 손님이었다. ‘똑 단발’이 어려운데, 바로 뒤에 온 손님이 자기도 앞에 분과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하여 내리 두 사람의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등에서 진땀이 흘러 옷이 젖었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자르고 그로기 상태가 되었던 그날이 지금도 선명하다고 했다. 어느 방향에서 어느 방향으로 머리카락을 나누고 잘랐는지 정확하게 몸이 기억한다고. 초심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에 이르지 않았을까.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하는 모습이 지금도 아름답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순간이 있다. 자신이 정한 길에서 현실이라는 인생 무대에 처음으로 홀로 서는 순간 말이다. 진로를 잘 정한 건지, 정한 길이 맞는 건지도 모른 채 현실과 마주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을 나 역시 선명하게 기억한다. 부모의 보호와 학교라는 문턱을 넘어 사회라는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안개 속에 홀로 버려진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삐 움직이는데,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해야 할 일이 뭔 지 몰라 서성였다. 졸업은 기쁨이 아니라 무거움이었다. 자신감은 급속히 떨어지고 주위 사람들의 질문과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두려웠다.

새라소타에 왔다. 딸이 내일 대학을 졸업한다. 마지막 날까지 졸업 작품 하느라 힘들었는지 얼굴이 뒤집어졌다.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뾰루지가 잔뜩 돋았다. 졸업사진을 찍으려면 화장을 두껍게 해야 할 것 같다. 내색은 안 하지만, 진로 때문에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스물두살, 장래라는 길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암담하고 우울하고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던 그 선상에 내 딸이 서 있다. 불안하고 힘들 것이다. 조금 빠르고 늦는 건 큰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자신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니 남과 비교하지 말고 천천히 앞길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후배들 앞에서 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고 말할 날도 오지 않을까?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성장이 멈춘 듯 보이나 어느 날 치고 오르는 모소 대나무 비유처럼, 스물 두 살이라는 문턱을 넘어 솟아오를 날이 올 것이다. 학교 근처 사거리에 딸의 작품이 든 조형물이 우뚝 서 있다. 무수한 차들이 지나간다. 모두가 기억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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