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캐버너의 모든 것을 찾아라”

2018-07-19 (목)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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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앞으로 수 십 년 보통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미국역사의 방향까지 바꿀지 모를 ‘새 얼굴’이 미국민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TV 생중계를 통해 발표한 새 연방대법관 지명자 브렛 캐버너 판사다.

종신제인 9명 대법관으로 구성된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법의 논란과 주-연방 정부 간 논쟁에 대한 마지막 중재자다. 낙태와 이민, 인종차별과 성차별, 노사분쟁과 사형제, 투표권과 선거기금 등 미 사회 대표적 분열 이슈에 대해 최종 판가름이 여기서 내려진다.

캐버너의 대법원 입성은 이미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 왔던 대법원의 5대4 이념편향을 뒤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보수성향이 한층 강해질 것은 분명하다. 때로 진보파에 합류해 판결의 방향을 바꾸었던 ‘중도 보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 은퇴로 그 빈자리를 메울 캐버너는 워싱턴 DC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해온 12년 동안 확고한 보수로 명성을 다져왔다.


상원에서 인준만 된다면 53세 젊은 캐버너의 합류로 ‘강력한 보수 대법원’이 오랫동안 건재할 것이라는 의미다.

“브렛 캐버너는 누구인가” - 그에 대한 의문이 폭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여성의 낙태권을 무효화시킬 것인가, 그는 정말 대통령이 법 위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가, 그의 보수성향은 소수민의 민권을 뒷걸음질 치게 하고, 대기업의 입지를 한층 강화시킬 것인가…그의 법철학에서 개인적·정치적 시각에 이르기까지 추측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상원 인준 청문회를 앞두고 이미 진보와 보수 진영은 각각 저지와 방어 전선을 구축하고 “캐버너의 모든 것을 찾아라” 작전에 돌입했다.

일반인들에게 캐버너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법조계와 정계에선 조지 W. 부시 백악관에 정치적 뿌리를 둔 인맥 넓은 ‘워싱턴 인사이더’로 상당히 알려진 얼굴이다. 지명 직전 캐버너 지명이 잠시 퇴색 기미를 보였던 것도 트럼프와 불편한 부시 일가와 너무 가깝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반 트럼프 공화당 유권자들까지 결집시켰던 자신의 공약이 ‘연방 대법원의 확실한 보수화’였다는 것을 잊지 않은 트럼프는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이다. 캐버너는 젭 부시나 미트 롬니가 대통령이었다면 주저 없이 택했을 정통보수 법관이다. 워싱턴 인사이더를 혐오하는 트럼프 지지기반에겐 흡족하지 못하더라도 공화당 의원들에겐 인준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자질과 이념을 갖춘 믿을만한 후보라는 뜻이다.

상원 공화당만 단합한다면, 민주당 반대가 아무리 심해도, 대법원 새 회기가 시작되는 10월 전에 인준을 성공시켜 트럼프는 또 한 차례의 ‘큰 승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준 직후 쏟아져 나온 반응의 찬성과 반대는 극단적으로 맞부딪쳤다.


‘최고의 선정’이라는 공화당의 평가를 뒷받침하듯 그의 서기로 일했던 30여명의 법조인들은 그가 탁월한 지적 능력과 따뜻한 성품을 지닌 이상적 법관이라는 찬사로 채워진 공동서한을 상원 법사위에 전달했다. 사실 그의 경력은 예일 법대 졸업에서 대법관 서기, 부시 백악관 법률 고문에 항소법원 12년 판사 등으로 화려하고, 늘 겸손과 배려를 강조하며 진보인사들에게도 좋은 친구인 열광적인 스포츠팬이자 다정한 패밀리맨인 그의 인품은 이념을 초월한 호감의 대상이다.

필사적 저지에 나선 민주당의 포커스는 나무랄 데 없는 이력서나 훌륭한 인품이 아닌 “극단적 이념과 편향된 법철학”이다. 그가 합류한 대법원에서 앞으로 극우 판결이 속출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여성과 동성애자, 이민자와 근로자와 소비자의 권리 약화와 함께 환경보호 퇴보를 경고하는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명을 막겠다”고 천명한다.

‘캐버너 대법관’에 대한 경고나 기대는 그의 보수성향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캐버너는 도대체 얼마나 보수적인가. 그 대답조차 엇갈린다. 300여건 판결에서 작성한 소견서를 통해 조사한 결과이지만 측정방법에 따라 현 대법원에서 가장 보수인 클레어런스 토머스 대법관 바로 다음 순위의 극우 보수라는 분석도 나왔고, 케네디가 떠난 대법원에서 그나마 중도 보수의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비슷한 중도 선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인준청문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이슈는 낙태와 대통령의 특권이다.

보수진영의 오랜 염원인 낙태권 무효화를 캐버너는 한 번도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 지난해 DC 항소법원이 밀입국 10대 소녀가 수용소에서 나와 수술을 받도록 낙태권을 인정해준 판결을 내렸을 때 반대소견서를 작성했으나 그 소녀가 미국 시민이 아니므로 낙태권리가 없다는 다른 보수 판사의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았다.(극우진영이 그를 불신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통령 특권에 대한 신념은 그가 젊은 시절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을 조사하는 케네스 스타 특검 팀에 합류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보고서 초안 작성에 참여했던 그는 클린턴과 인턴의 성관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부분은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개의 엄청난 후유증을 보며 그는 “이런 수사는 월권의 위험이 있다”라고 깨달았고 그 후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수사나 민사소송에서 보호받아야한다”고 주장해 왔다.

뮬러특검 수사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에겐 너무 마음에 드는 신념이겠지만 청문회에서 민주당의 집중 공략에 시달릴 타겟이 될 것이다.

인준전쟁의 승세는 공화당에 기울어져 있다. 공화당에서 낙태권 때문에 반대 가능성이 높았던 두 여성의원이 캐버너에 대한 호감을 공식 표명했고, 보수지역 재선에 출마하는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압력 행사도 시작되었다. 그나마 캐버너 인준에 대한 여론지지가 40% 안팎으로 높지 않긴 하지만 인준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상원의원들이지 여론이 아니다.

2016년 대선 패배, 그 ‘선거의 결과’를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여름이다.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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