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의 의미-역경을 승리로

2018-07-18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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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특히 사업에 실패하거나 중병을 앓고 난 후에는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삶의 의미’에 대해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이론을 세워 정신학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학자가 있다. 빅터 프랭클 박사다. 그는 유대인 정신과의사로 나치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이 주위환경에 어떻게 적응해나가는가를 목격하게 된 것이 ‘삶의 의미’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에게 동기를 부여한 장면은 이렇다.

연합군의 공격이 임박하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되어있던 유대인들은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F라는 유대인은 3월 말(1944년)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될 것을 확신한다면서 들떠 있었다. 그런데 3월 29일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자 그는 실망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3월 31일에도 연합군이 나타나지 않자 그는 실망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F의 케이스에서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반드시 살아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아남느냐 죽느냐는 당사자의 내적인 힘에 좌우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고 이는 후일 그가 세운 로고테라피라는 이론의 중심이 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사망률은 1944년 크리스마스와 1945년 새해에 급상승 했다. 왜냐하면 연합군이 6월에 노르망디에 상륙했기 때문에 12월 25일까지는 자신들이 구제되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아우슈비츠는 소련군에 의해 1945년 1월 말에 해방되었다).


프랭클은 인간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다가 참담한 현실에 직면하면 덮쳐오는 절망감을 느끼면서 신체의 저항력을 잃고 무너져 버린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버티지만 희망에 너무 의지하고 있다가 그 상황이 실망으로 변하면 스스로 존재가치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랭클은 깨진 유리조각으로 매일 면도하면서 얼굴을 가꾸었다. 얼굴에 병색이 나타나면 개스실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그는 연합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으며 그때까지 죽어도 살아남아야 된다는 것을 자신의 삶의 의미로 삼았다.

프랭클 박사의 결론은 무엇인가. 상황이 변하지 않을 때는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경험을 쓴 ‘Ma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책을 읽고 감동해 아우슈비츠를 혼자 찾아가 취재한 적이 있다. 그의 저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한국어 번역판으로도 출판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한다. 그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것은 그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저서에서 강조하고 있다. 개스실에 끌려가면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기도하며 당당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이다.

태국 소년들이 동굴에 갇혀 있을 때 칠레광산에서 69일 동안 갇혀 있다가 살아남은 광부 레이가다스가 소년들에게 충고한 내용은 “살아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라”였다. 역경을 승리로 바꾸는 비결은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한국노인들의 자살률이 왜 높은가. 삶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도 삶의 한 과정이며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는 발견해야 한다. 인간의 승리는 자신에게 닥친 곤경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느냐 에서 판가름 난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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