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와 푸틴의 ‘밀실 회담’

2018-07-12 (목)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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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참모들을 모두 내보내고 닫은 문 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 곳곳에서 회오리를 일으킬 미 대통령의 유럽순방 마지막 일정인 트럼프와 푸틴의 헬싱키 ‘밀실 회담’이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뉴스의 각광을 누구보다 즐기는 그의 기준으로도 ‘지나치다’ 싶게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국제무대를 누비며 세계 정상들의 심기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한 주 일정은 흥미로운 이벤트의 숨 가쁜 연속이다.

월요일 강경보수 차기 대법관 지명으로 워싱턴을 인준전쟁으로 몰아넣은 후, 화요일 6일간의 유럽순방 길에 오른 그는 수요일과 목요일 브뤼셀에서 우방들과 격전을 불사하는 나토 정상회의를 마치고 금요일엔 영국으로, 일요일엔 헬싱키로 날아간다. CNN의 표현에 의하면 “영국 여왕과 러시아 대통령까지 자신의 멜로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시키면서” 세계무대의 조명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나토 회의 첫날부터 독일과 정면충돌하며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 증액 강공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우방 간 유대 강조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강력 비난을 담은 공동선언문에는 서명했다. 나토 흔들기는 확실했으나 나토 와해까지로 치닫지는 않은 셈이다.

목요일 오후부터 시작될 영국 방문은 트럼프에게 오래 기다려온 ‘귀향’과 같다. 스코틀랜드 이민자였던 그의 어머니가 경애했다는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티타임도 마련되었고 테레사 메이 영국총리의 농촌 공관에서 실무회담도 갖게 되며 주말엔 골프일정도 잡혀있다. 그러나 미 대통령들이 누려온 축제 같은 국빈 환영행사는 없다. 대신 대규모 항의 시위대가 벼르고 있어 모터케이드는 언감생심, 영국 내 트럼프 이동은 헬리콥터를 이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프럼프’ 혹은 ‘투틴’이란 줄임말로도 불리는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만남이다. 지난해 국제회의에서 두 차례 만났고 전화통화도 최소 8번은 했지만 공식적으로 양자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처음이다. 내주 월요일로 예정된 3차례 회담 중 한 번은 통역관만을 동석시킨 두 사람만의 1 대 1 회담이다.

예측불허의 즉흥적인 트럼프와 소련 비밀경찰 KGB 출신의 능란한 푸틴의 밀실 대담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이슈를 피해 갈 것인지는 추측이 가능하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후 최악으로 치달아온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논의해야 할 중대 이슈들은 산적해 있다 - 이란과 이스라엘이 얽힌 시리아 사태, 국제사회의 대 러시아 제재, 새로운 핵무기 경쟁의 공포, 미 대선 개입 의혹, 그리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러시아의 역할…

미 국내에선 트럼프가 푸틴에 대해 미 선거 개입 중단 경고를 최우선과제로 삼아주기 원하고, 유럽 우방들은 트럼프가 점점 대담해지는 푸틴의 군사정책에 강력하게 맞서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둘 다 희망사항에 그칠 뿐 주요 어젠다가 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참모들이 배석한 회의보다 미국 내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서로에게 과도한 찬사를 보내며 위험한 브로맨스를 과시해온 두 정상의 밀실 회담이다.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러시아 내 시각에서 미국 쪽 불안의 실체가 읽혀진다. 트럼프에겐 국내외로 정치적 역풍을 맞을 위험이 다분하지만 “푸틴에겐 회담 개최 자체가 이미 ‘승리’다. 이번 회담에서 양측 모두 획기적 결과를 기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보는 정상회담은 러시아의 국제사회 내 강력한 위상에 대한 미국의 인정이며 러시아의 국익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미국의 뒤늦은 각성으로 간주된다”고 모스크바 발 로이터 통신은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잉반응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러시아를 소외시킬 수도 무시할 수도 없다”는 자신감을 의미한다. 국제정치 초보 트럼프가 18년 베테랑 푸틴에게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 영유권의 정당성을 설득당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러시아의 정치가들은 이렇게 덧붙였다. “트럼프가 이번에 푸틴에게 한 수 배워갈 것이다”

러시아의 이런 자신감 아니라도 이미 미국 내에선 진보는 물론 보수진영에서도 트럼프가 만남 자체를 이용하려는 푸틴에 말려들어 “너무 많이 양보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구체적 정책의 명문화가 아닌 그저 ‘좋은 만남’을 긍정적 성과로 보는 트럼프의 외교 시각도, 트럼프의 부적절한 ‘푸틴 감싸기’도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크림반도 강제 병합이후 G8에서 축출된 러시아를 다시 복귀시키라고 촉구해 우방들을 아연케 했고, 미 정보기관과 공화당 주도 상원에서도 “맞다”고 결론 내린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이슈에 대해서도 “푸틴은 대선 개입을 부인했다. 난 그의 태도가 진심이라고 믿는다”라고 미 대통령으로선 하기 힘든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왜 그럴까.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이 세계를 안전하게 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는 불가해한 푸틴 감싸기로 인해 “트럼프와 러시아의 30여년 유대”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트럼프 일가와 러시아 정·재계의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비롯된 어떤 정보를 빌미로 대통령이 압박 받을 가능성을 시사한 최근 뉴욕 매거진의 심층기사도 그중 하나다.

미국과 우방들의 불안한 시선이 어른대는 푸틴과의 밀실 회담 결과는 트럼프에 대한 이 같은 의혹을 잠재울 수도, 더 키울 수도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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