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은 이변의 나라

2018-07-04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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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경기가 끝난 후 가을에 터키를 여행한 적이 있다. 시내 식당에 들어가 터키 소주인 ‘라키’를 한 병 시켰더니 주인이 직접 들고 와 “꼬레아니까 돈 안 받겠다”고 한다. 좀 얼떨떨해서 그 이유를 물으니까 월드컵 4강전에서 한국이 터키에게 져줘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그 후 터키 어디를 가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터키사람들이 웃으며 반겨주었다. “세상만사 꼭 이기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 로구나” - 월드컵에서 얻은 교훈이다.

이 같은 이변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대회에서도 일어났다. 한국이 독일을 꺾어 멕시코가 16강에 진출하게 되자 멕시코시티의 한국대사관에 멕시코인들이 달려가 한병진 총영사를 목마 태우고 행진했으니 말이다. 내가 본 최고의 걸작(?)은 손흥민과 조현우의 사진을 예수 사진과 합성해 SNS에 올리고 ‘그라시아스, 코리아(Gracias Korea)’라고 해시태그를 올린 케이스다. 예수의 사진을 곁들인 것은 한국이 멕시코의 구세주라는 뜻이다.

이건 이변 중의 이변이다. 16강 올라간 것 보다 훨씬 나은 코리아 이미지다. 만약 16강 경기에서 멕시코가 브라질에 패하지 않고 4강에 오르고 나중에 우승까지 한다면 어떻게 될까. 멕시코에서 현대자동차와 LG, 삼성 TV 냉장고가 2배는 더 팔리지 않았을까.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FIFA 랭킹 1위인 독일을 2대 0으로 이긴 것은 영국 데일리지에 의하면 월드컵대회의 두 번째 이변에 속한다. 월드컵 이변 1위는 2014년 브라질이 개최국인데도 독일에 7대 1로 참패한 케이스다.

한국은 이변의 나라다. 축구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세계에 없는 이변을 연출해내지 않았는가. 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북한의 김정일이 트럼프와 만난 것은 정치적 이변이다.

월드컵에서도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이변을 만드는 데는 으뜸이다. 월드컵 10개의 이변 중 한국이 3개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2002년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꺾고 4강에 오른 것은 월드컵 이변 6위에 속한다. 월드컵 이변 4위도 꼬레아다. 1966년 런던 월드컵대회에서 우승후보였던 이탈리아를 북한이 1대 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한 사실이다.

뿐 만인가. 경기에서 최단 시간 골을 내어준 것도 한국이다. 독자들은 2002년 한국이 4강에 오른 첫 경기에서 경기시작 11초 만에 명수비로 알려진 홍명보가 터키의 수크르에게 골을 내어준 어이없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4강에 오른 팀이 경기시작 11초 만에 상대방에게 골을 허용했다?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보여준 팀이 한국팀이다. 한국팀은 북극과 남극을 왔다 갔다 하는 팀이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변을 일으키며 우승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는 팀은 벨기에와 크로아티아다. 벨기에는 월드컵예선에서부터 지금까지 무패를 자랑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나라 전체가 ‘Again 1998‘을 외치며 축제를 벌이고 ‘수케르의 아이들’로 짜여진 최강팀을 내세우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후 처음으로 출전한 1998년 월드컵 프랑스에서 독일을 3대 0으로 꺾고 8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때 명 스트라이커인 수케르가 6골을 넣어 대회 최다득점 왕에 올랐다. 그 전설의 수케르가 그 후 크로아티아의 축구협회장이 되어 길러낸 선수들이 지금의 ’수케르의 아이들‘로 불리는 모드리치 등 뛰어난 선수들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열기가 높고 스릴 있는 경기는 오는 6일(금)의 브라질-벨기에 대전과 7일의 크로아티아-러시아 대전일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새로운 월드컵 이변을 만들어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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