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축구와 트럼프외교

2018-06-20 (수)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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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한국축구 - 실망 정도가 아니다. 한심하고 부끄럽다. 4년 동안 닦은 실력이 겨우 저 정도란 말인가. 오늘 아침 콜롬비아를 꺾은 일본팀과 너무나 대조를 이룬다. 일본팀은 스피드가 있었고 패스가 정확했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침내 일본팀은 콜롬비아를 2대1로 이겼다. 월드컵경기에서 아시아팀이 남미팀에 승리한 것은 일본이 처음이다.

한국팀은 월드컵경기 전지훈련에서 유난히 숨어서 연습하며 무슨 큰 비결이라도 있는 듯 보안을 강조했다. 심지어 외부인들이 못 보게 훈련장에 가림막을 설치한 적도 있다.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연습할 때도 그저 쉬쉬하면서 연습했다.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는 손흥민이 제외된 김신욱과 황희찬을 두 톱으로 내세우고 선수들의 등번호도 가짜번호로 위장했다. 세네갈과의 평가전은 아예 비공개로 했다.

기자들이 신태용 감독에게 왜 그렇게 숨기는 게 많으냐고 물으니까 신 감독은 이번 월드컵은 일종의 정보전이라면서 한국팀이 그동안 보여준 것은 일종의 트릭이며 스웨덴과의 본게임에서 무언가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트릭이라... 그럼 뭔가 비밀병기가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거 정말 기대되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도록 신태용 감독이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스웨덴 전에서 카드를 까고 보니 김신욱을 센터포워드로 세우고 좌우에 손흥민과 황희찬을 배치하는 스리톱을 택했다. 이게 무슨 트릭? 손흥민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가둬놔 경기 내내 스웨덴팀에 리드당하고 세트플레이 하나도 보여주지 못한 채 유효슈팅 0라는 기록을 세웠다.

뭔가 보여줄 것처럼 가뜩 기대하게 해놓고는 막판에 어이없는 내용이 노출된 것은 한국축구와 트럼프외교가 꼭 닮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핵을 내놓으면 북한은 아무것도 없어지는데 김정은이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 그러나 트럼프가 워낙 좌충우돌하는 스타일이고 트릭을 좋아하는 정치인이라 예측불허의 결과가 북미회담에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북한은 비핵화의지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핵 위험은 사라졌다”며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지를 자신이 먼저 제안했다는 것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원내대표가 “트럼프 대통령,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사람인가?”라고 기막혀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고 본다. 게다가 이 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자신의 전화번호까지 주는 친절을 보이고 회담 후 백악관 웨스트윙 벽에 김정은과 악수하는 사진을 걸어놨다니 어이가 없다. 북미회담이 트럼프의 김정은 신원보증 회담처럼 되어버려 김정은의 몸값만 잔뜩 올려놨다.

가장 불쾌한 것은 한미연합훈련의 중요성을 돈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미관계는 이익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다. 혈맹으로 맺어진 우방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부동산거래처럼 두 나라의 관계를 돈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혈맹에 대한 모욕이다. 모든 것이 11월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빚어지는 트릭이다.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11월 선거를 위해서 북핵 협상을 하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이러다가는 트럼프가 북한과 손잡고 무슨 일을 벌이지 않을까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주한미군 철수가 미국대통령 입에서 터져 나오는 판국이니 말이다.

미국이 김정은 체제를 보장하려면 조약을 맺어야하며 상원의 승낙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는 민주당 상원이 반대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체제보장이 안되는데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트럼프가 취해야 할 행동은 초강경 무력시위다. 트릭 좋아하는 리더들은 막판이 우습게 끝나기 마련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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