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흑인들에 대한 고정관념

2018-06-03 (일) 11:26:08 남선우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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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폭 주립대학에 교편을 잡고 있었던 1974년부터 약 1년동안 당시 하와이에 살던 가족과 떨어져 살 수 밖에 없던 사정으로 흑인지역에서 하숙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같은 여호와의 증인회 중 장로의 집이었는데 때로는 밤에 퇴근할 때 버스에서 내려 술집 등 불량배들이 서성거리는 위험지구를 거쳐 그 집에 도착하곤 했었기에 조마조마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도 강도나 폭행을 당하지 않고 지냈다. 짐작컨대 아마도 당시에 큰 인기가 있었던 부르스 리의 쿵푸 영화들 때문이었을 듯싶다. 토요일에 전도를 나가면 흑인 청소년들이 나에게 쿵푸 시범을 해달라고 조르던 것으로 그리 짐작된다. 그들에게는 키 큰 동양사람들은 모두 무술의 달인이라는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하숙집에서 접한 19세기 말 어느 목사의 책을 훑어보니 흑인들은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억지가 들어있어 놀랍기만 했다. 세계 모든 민족들이 노아의 세 아들과 며느리들에게서 나왔다는 창세기 10장 내용은 읽어보지도 못한 자의 미친 수작쯤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만민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미국 건국이념과 흑인은 인간이 아닌 상품이라는 노예제도 사이의 괴리 때문에 노예제도 폐지의 연방 수정헌법 제 13조 채택 이후에도 거의 100년 동안 흑인들에 대한 사실상의 차별이 공공연히 이어져 왔었기에 흑인들 또는 유색인종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집요하게 명맥을 유지해왔다.

ABC TV 네트워크의 인기 코미디쇼 ‘로샌’의 주인공 로샌 바의 이번주 초 트위터 소동도 흑인들에 대한 편견 또는 고정관념이 백인들 특히 백인 저학력, 저소득층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얼마나 뿌리깊이 박혀있는가를 잘 예시하고 있다. ‘무슬림 결사단체+원숭이들의 행성=VJ’라는 로샌의 트위터는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였던 밸러리 자렛 여사가 ‘원숭이’란 조롱이다.

워낙 로샌은 20여년전 그의 이름이 든 ABC의 시트콤으로 유명했던 코미디언으로 백인들 소외 계층의 애환을 잘 그렸다고 평가 받았던 사람이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백인보수층의 정서를 대표한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로샌’을 3월달에 부활시켜 미국 네크워크의 넘버원 쇼로 만든 게 ABC였었다.

그러나 자렛 여사만이 모욕을 당한 게 아니었다. 오바마의 국가안보보좌관이던 수잔 라이스 박사도 원숭이라고 불렀던데 더해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때의 어린 생존자였던 조지 소로스를 나치의 협력자라는 등의 백인 국수주의자들의 편견을 트위터에 올려 왔었던 전력 때문에 ABC는 자렛 여사에 관한 최근의 트윗 직후에 ‘로샌’ 쇼 자체를 취소해 버렸다.

취소결정 직전에 ABC의 CEO는 자렛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로샌의 언동이 ABC와는 무관하지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로샌’이 3월에 새 출발했을때 축하를 아끼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ABC가 자렛 여사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을 질책했다.

백인들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지만 흑인들에 대한 편견의 표출은 고질적이고도 다양하다. DWI는 술이나 약물에 취한 채 운전한다는 세 단어의 약자다. 흑인들 사이에는 DWB란 말이 금세 이해된다. 흑인들이 좋은 차들을 운전하면 마약밀매꾼이나 기타 범법행위자로 지레 짐작하여 경찰이 차를 정지시키기가 일쑤란 이야기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만 보아도 흑인들은 백인들과는 달리 여러 면에서 차별을 받는다.
필라델피아의 어느 스타벅스에서는 두 명의 흑인들이 친구를 기다리느라고 커피를 주문하지 않았기에 매니저가 경찰을 불러 수갑을 채웠다, 예일대학교의 흑인 여학생은 자기 기숙사의 공동구역안의 소파에서 낮잠을 잔다고 다른 학생들이 전화를 걸어 경찰이 와서 심문을 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의 오피니언 페이지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의과대학의 여의사가 레지던트 이후의 펠로우십을 받은데다가 자신이 임신한 것이 너무 기뻐, 좋아하는 힙합음악을 아파트에서 듣고 있었는데 심한 노크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다른 아파트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 둘이 서있어서 대경실색한 경험담이 실렸다. 그때 시간이 오후 3시경이란다. 테네시의 멤피스 시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부동산 투자가가 된 30대 흑인이 빈집을 사서 고치려고 들어갔다가 이웃주민들이 경찰을 불러 심문을 당했다.

그래서 이제는 DWB가 아니라 LWB(Li-ving While Black)이란 웹사이트마저 생겼단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거나 수모를 당할 뿐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죽는 불행까지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인종편견이나 차별이 없는 세상이 언제 오려나.
<변호사 MD, VA 301-622-6600>

<남선우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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